한국일보

[English for the Soul] 절규

2016-02-19 (금) 03:11:40 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영어서원 백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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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cream / 절규


We know that the whole creation has been groaning in travail together until now.
온 창조 세계가 함께 산고(産苦) 중에 지금까지 신음해왔음을 우리가 아나니.

얼핏 조화롭게 보이는 자연. 하늘은 푸르고 산들은 높으며 바다는 잔잔하고 숲속은 적막? 그런데 구원(救援)복음의 결정판 <로마서>는 온 피조 세상이 온통 신음 중이라 합니다. (8:22) 문득 노르웨이 사람 에드바르 뭉크의 묘한 그림 <절규>가 심안으로 오버랩됩니다.


"친구 둘과 함께 길을 걸어 가고 있었다. 해질녘이었고 나는 약간의 우울함을 느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멈춰선 나는 죽을 것만같은 피로감으로 난간에 기댔다. 그리고 핏빛하늘에 걸친 불타는 듯한 구름과 암청색 도시와 피오르드에 걸린 칼을 보았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그때 자연을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커다란 비명 소리를 들었다." 뭉크가 1892년 1월에 남긴 글입니다. [위키]그림보다 더 시적인 묘사입니다. 생생한 체험의 표현입니다. 영어로 읽어 볼까요? 행간의 뜻이 붉게 다가옵니다. I was walking along the road with two friends – the sun was setting – suddenly the sky turned blood red – I paused, feeling exhausted, and leaned on the fence – there was blood and tongues of fire above the blue-black fjord and the city – my friends walked on, and I stood there trembling with anxiety – and I sensed an infinite scream passing through nature. 일찌기 산문체로 썼던 내용을 뭉크 자신이 시어(詩語)로 재구성한 문학 작품입니다.


We know that the whole creation has been groaning in travail together until now.
온 창조 세계가 함께 산고(産苦) 중에 지금까지 신음해왔음을 우리가 아나니.

뭉크가 두려움에 떨며 "자연을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커다란 비명 소리"를 들었다는 소식은 사도 바울의 귀에 들리던 삼라만상의 신음(groaning)에 다름 아닙니다. 일본 사람 우치무라 간조 또한 비슷한 말씀을 전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는 크리스천이 많지 않은 일본 땅에 미려(美麗)한 신학 담론을 선사하신 분입니다. 들어볼까요?“사람은 자연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말하지만, 그러나 사실 자연은 아름다움이 아니고 추함이요,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다. 나무에 꽃이 피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는 모습은 얼마나 살벌하고 파괴적인가.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으려 하고, 개구리는 벌레를 잡아먹으려 하고, 벌레는 서로를 죽이려고 한다. 또 뱀을 독수리가 노리고 있고, 독수리는 또 다른 새들이 노리고 있다. 여름의 숲은 결코 에덴동산이 아니다. 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귀를 땅에 대고 들어보라. 자연의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자연은 이렇게 외치고 있다.” “나는 아프다. 나는 고통스럽다. 나를 빨리 구원하라.” 일찌기 대한민국 개신교 사람들, 특히 김교신 내지 함석헌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우치무라 간조(1861-1830). 종종 '무교회주의'로 불온시 되기도 했던 그는 특히 <로마서> 8장을 일컬어 "보석산의 정상'이라 칭송하며 아름다운 시어로 강해를 써내기도 했었죠. 그가 보석산 정상에서 들었던 자연의 신음, 바로 를그렸던 뭉크의 속내와 다름 아니려니.

We know that the whole creation has been groaning in travail together until now.
온 창조 세계가 함께 산고(産苦) 중에 지금까지 신음해왔음을 우리가 아나니.

붉은 구름들을 배경으로 그림 앞면에서 절규하는 인물(?)은 흡사 외계인이나 유령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뭉크의 <절규>야말로 모든 피조물의 실존적 산고(産苦)를 예표하는 단말마적 표현이 아닐런지요. 구약성경 <창세기> 3:17절에 이같은 실존적 고뇌의 뿌리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하나님께 불순종한 첫사람 아담 때문에 모든 인류와 더불어 '땅' 전체가 신음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더라. 그렇게 한꺼번에 타락한 창조 세계는 다만 '그 때'를 기다리는 소망 중에 신음하고 절규하며 굳은 믿음으로 살아야 하리라. 사도 바울과 우치무라 간조의 구원 복음 해설이 뭉크의 《The Scream/절규》 속에 더욱 진하게 묻어납니다.

<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영어서원 백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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