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곁에 있을 때 잘하자

2016-02-08 (월) 03:48:21 이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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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때 잘해”라는 말은 시구절에도, 노래 가사에도 있지만 우리가 한 번쯤은 직접 들어 보거나 써 본 말이기도 하다. 나도 예외는 아니라서 누구한테선가 들어 보기도 하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해 본 적도 있다. 누군가 소중한 사람을 잃어 본 사람은 이 단순한 명언이 정말 뼈아픈 진리가 될 수 있음을 안다.

조금 있으면 발렌타인스 데이이다. 마음의 한 구석을 차지하는 사람들과 뭔가 의미있는 것을 주고받고 싶은 날이기도 하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런 날일수록 그냥 넘어가지 않고 뭔가 감정의 표시를 한다. 그런데 더 지혜로운 사람들은 이런 특별한 날에만 감정의 표시를 하지 않고 평소에도 잘한다. 지혜로움에도 단계와 급이 있는 것 같고 감정의 표시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보이지 않는 마음의 표시가 그 무엇보다 특별한 선물이 될 수도 있는 날이다.

나 같이 지혜롭지도 않고 감정의 표시에도 미숙한 사람은 매순간 잘할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치고 시간이 많이 흐르거나 아니면 아예 잘할 수 있는 순간들을 다 놓친 다음에야 두고두고 후회를 하고 죄책감과 괴로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형제 많은 집안의 늦둥이 막내로 자란 나는 어릴 때부터 주기보다는 받는 것에 더 익숙해져 있었고 의외로 애교도 없는 응석받이로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도 당연시하며 무심하게 살았던 것 같다. 췌장암 판결을 받은 지 3개월만에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께 못 해드린 것만 생각나서 10년 이상을 시달렸다. 가끔 가다 잘해드린 것을 떠올리게 되면 가슴을 쓸어 내리며 그나마 다행이다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곁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한테 잘해줘야 하는 건 궁극적으로 보면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해서 그래야 한다는 걸 느끼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최선을 다한 뒤에 오는 담담한 평온함은 오랜 안도감으로 다가온다. 누군가 우리 곁에 있을 때, 특히 그 누군가가 우리한테 잘할 때, 아니 잘하지 못 하더라도 있을 때 잘하자.

<이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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