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거의 매일 밤 11시쯤 내 방문을 살포시 열고 얼굴을 빼꼼이 내밀고는 말한다. “이상하네, 왜 배고프다는 말이 없어?”. 이 말은 ‘나 입이 심심한데 이 시간에 혼자 먹기에는 양심에 찔리니 너도 좀 같이 먹었으면 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추리소설, 스릴러영화, 그리고 스파이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사랑하는 그녀는 미국 드라마 ‘24’의 여덟 시즌을 몰아본 후 한동안 헬리콥터나 사이렌 소리가 나면 눈빛이 달려지곤 했다. 나도 같이 보다가 고문장면이나 부상장면에서 피가 나오면,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그녀를 위해 눈을 가려주기도 했다.
간식과 단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커피와 하와이언롤 2개를 같이 먹다가 빵이 떨어지면 슬그머니 나를 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만든다. ‘빵 2개 더’라는 뜻이다. 스타워즈에는 관심이 없지만 해리포터는 너무 좋아하는 어린아이 같은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아줌마다.
내가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오늘은 우리 엄마 생신이다. 오늘 아침에 내놓으려고 어제 저녁에 만들어 놓은 미역국은 생각보다 맛있어서 사실 어제 저녁 늦게 우리 둘이 반그릇씩 깍뚜기와 먹었다. 엄마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내가 생애 처음으로 엄마 생일날에 미역국을 끓여 드렸다는 사실이 죄송스러워졌다.
안그래도 요즘 요리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지라 저녁은 외식 대신 동생과 함께 요리를 하기로 했다. 메뉴는 칠리새우, 카프레제 샐러드, 무쌈으로 싼 스테이크와 야채, 그리고 퀴노아, 야채볶음, 캐이퍼즈를 곁들인 연어다. 음료수는 블러드 오렌지 진 스파클러로, 물론 술을 잘 못하시는 엄마의 잔에는 술은 반만 넣을 생각이다.
한식과 양식이 섞이고 요리 궁합이 잘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동생과 내가 몇일을 궁리하여 우리 실력에 맞춰 정한 메뉴다. 어제 동생과 장을 보고나서 엄마가 메뉴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냉장고 근처에도 못가게 지키다가, 오늘 새우, 스테이크, 연어를 해동시키려고 밖에 내놓고 보니, 엄마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셨다. 앗, 들켜버렸다.
우리 엄마는 내게 너무나 애틋한 존재다. 엄마가 내 생일에 끓여주신 미역국은 지금까지 스물네그릇. 내가 엄마를 위해 끓여준 미역국은 이제 한 그릇일 뿐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내년에는 홍합도 넣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