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최현정 l 오래된 사진첩

2012-06-12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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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방을 정리해 주다가 한국에서 가져온 사진첩을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한쪽켠에 세워진 채로 오랫동안 있었기에 겉표지 색깔이 허옇게 바래 버렸다. 혹시 안에 있는 사진도 상했을까봐 얼른 사진첩을 열어 보았다. 오랜만에 만나보는 나의 옛 모습들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었다. 반갑기도 하고 그리워지는 옛 생활의 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참을 쳐다보니 슬며시 사진 몇장은 빼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암만 봐도 사진속의 내 모습이 멋있게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요즈음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더라면 분명히 삭제했을 사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라도 사진을 다시 정리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사진들을 이리저리 만지기 시작했다.

요즈음 심심치 않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 경력 때문에 망신을 당하거나 큰 수모를 당하는 기사를 가끔씩 접하게 된다. 아마 그들도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지워 버리거나 다시 새롭게 자신들의 역사를 쓰고 싶었을게다.


그러나 한번 밟고 온 눈길을 다시 바로 잡을 수 없듯이 우리가 살아온 삶의 모습들은 오랜 사진첩의 사진들처럼 우리의 옛 모습들을 그대로 보여줄 따름이다. 오히려 자신이 밟아 온 눈길을 고치려 하다가는 눈밭에 찍힌 예쁜 발자국이 더욱 엉망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들이 살아온 모습들은 우리들의 기억보다 더욱 선명한 것이며 한순간 한순간이 더욱 소중한 우리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첩을 정리하며 빼어 버리려고 했던 사진들을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기 시작했다. 그래, 내 맘에 안 들게 나온 사진도 나의 일부분이지. 좋든 싫든 이러한 나의 옛 모습들이 내가 사랑해야 할 것들이구나. 한번밖에 살 수 없는 나의 인생. 그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리고 매 순간을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오늘 아침도 내 손으로 뽑는 커피가 구수한 맛을 잃지 않고 향기롭게 되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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