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최정우 l 위로

2012-06-07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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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가혹한 나라다. 위로와 휴식에 인색해서다. 실패에 용서가 적고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정체의 순간을 받아들일 줄 몰라서이기도 하다. 쉴 줄 모르는 사람들, 실패로 다친 마음을 회복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거역할 수 없는 인생의 방법을 정해놓고 스스로를 옭아맨다.

성적을 높여라. 제 때, 안정적인 곳에 취업해라. 돈을 충분히 벌어라. 적령기에 결혼해라. 아이를 낳아라. 자녀 양육에 열정적으로 투자해라. 그렇지 않으면 ‘늙어서 깡통 찬다’.

그러나 실패는, 온다. 대비할 수 없다. 오히려 꽉 짜인 삶에 대한 의존이 높을수록 사람은 더 실패에 약해지고 작은 고비에도 잘 넘어진다. 오지 않은 미래를 더욱 두려워하게 되고 불안해하게 된다. 불안한 사람들은 내가 택한 삶의 방식이 나를 벼랑에 몰고 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더 절박하게 필요로 한다. 삶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진다. 불안 때문에 고단하고, 외롭고, 더 불안해지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희망과 행복보다 미래에 대한 공포를 더 많이 공유하는 사회는 삶과 행복이 아닌 고통을 재료로 새 고통을 재생산하는 절망의 공장이다. 불안의 공장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한 준비조차 할 줄 모른다. 불안을 불안으로, 고통을 고통으로 인정하는 순간부터 나은 세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어떤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었을 때 불안이 잦아들고 그때야 행복해질 준비가 된다. 행복에 준비된 사람이 행복을 기껍고 충분히 즐길 줄 알게 된다.

자신을 믿고 한 결정이라면 어떠한 삶의 방식을 택해도, 괜찮다. 혹은 자신을 믿고 과거에 어떤 선택을 해서 실패했더라도 괜찮다. 그 선택이 심지어 내 삶을 향한 가족과 지인들의 요구를 외면한 것이어도 괜찮다.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큰 소리 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닥쳤던, 혹은 앞으로 닥칠 모든 상처와 고비들에게 괜찮다 말하고 위로할 줄 아는 것이 호연지기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힘도 못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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