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최정우 l 연예인과 소도둑

2012-05-24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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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고영욱이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본인도 혐의를 인정했고 경찰 조사 결과도 고발 내용이 사실이라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상식적인 시민이라면 누구든 분노할 일이다. 허나 한 연예인의 불법, 윤리적 해이에 대해 쏟아지는 시민들의 반응을 공직자 불법, 윤리적 나태를 향한 시민들의 반응과 비교했을 때 비감이 든다.

공직자와 공직자 친인척 비리가 봇물처럼 쏟아진다. 그들이 제대로 법의 심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 또한 끝이 없다. 시민들은 사건을 접하며 복잡한 비리의 내용, 소송과 정치 공방 과정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힘 있는 자들이 불법을 자행하고 법의 심판을 피했을 때 느낀 자신의 분노와 박탈감은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의 무력감을 달랠 돌파구를 찾는다. 가수들이 순위를 매기는 쇼 프로그램에 대해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수준 이상의 공정성을 요구하고 가수의 학력 위조 혐의 조사를 두고 국정조사 이상의 엄격함을 요구한다. 법의 도움 없이도 여론의 권력을 이용해 만만한 연예인들을 재판하고, 사형선고 내린다.


연예인의 개인사는 가십일 뿐이다. 내 힘으로 잘잘못을 가리지 못해 일어날 사회적 파장, 없다. 아이들이 보고 배운다거나 사회가 문란해진다는 이야기는 과장이다. 그들은 법을 어겼다면 법제도 안에서 처벌받고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짓을 했다면 직장을 잃거나 수입을 상실하는 과정에서 처벌받는다. 사소하지만 상식적인 이 과정을 통해 사회는 충분히 건강해진다.

공직자의 윤리적 해이와 범법행위는 법제도의 부실로 이 건강한 과정을 못 거치고 있다. 그 결과는 가십에 대한 여론재판 여부가 미치는 영향과 달리 직접적이다. 세입을 통해 국가가 실행할 공공서비스의 내용와 양이 부실해진다. 가정 경제는 세금의 의무를 다 한 뒤에도 국가 경제가 짊어질 부담을 또 다시 짊어진다. 개인의 경제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권력과 세상에 대한 시민의 무력감은 점점 더 커진다.

잘못된 일에는 분노하는 것이 옳다. 허나 바늘 도둑 곤장 치느라 소도둑이 드나드는 걸 묵과해서야 쓸 일인가. 남의 집안 싸움 구경하는 동안 내 돈 먹여 키운 검은머리 짐승이 내 집 안방에 금은보화 훔쳐가고 있는 꼴을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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