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최현정 ㅣ 잊지 말아야 할 것들
2012-05-15 (화) 12:00:00
한국에서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샌프란시스코에 여행을 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잠시 살았던 나는 이 도시의 매력적인 부분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어 내가 아는 한 최선껏 안내했다. 우리는 전망이 좋은 Legion of Honor에 도착했는데, 오후 햇빛에 반짝이는 태평안 연안 풍경에 친구는 입을 딱 벌리며 감탄했다.
근처를 돌아보던 중 친구의 표정이 순간 멈칫 굳어 버렸다. 친구가 본 것은 유태계 미국인들이 한쪽 켠에 만들어 놓은 홀로코스트 기념 조각물이었다. 친구와 나는 벽에 각인된 기념비를 함께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들이 당한 압박과 설움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내용의 글귀였다. 그 옆에는 처참한 모습으로 가스실에서 처형된 유태인들의 알몸둥이가 이리저리 뒹구는 조각물이 있었다.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을 저렇게도 잔인하게 살육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끔찍한 모습들이었다.
한편으로는 Legion of Honor 미술관 근처의 평화로운 풍경과는 도저히 양립될 수 없을 것 같은 오골이 송연해지는 조각물들이었다. 왜 이렇게 끔찍한 조형물들을 이 자리에 꼭 세워야만 했을까? 야속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아픔을 겪었던 유태인들의 입장이 이해되는 면도 있다. 오죽 고통스러웠으면 세계 곳곳에 이런 홀로코스트 기념비를 세워 놓았을까 하는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 이 조각 기념물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요즈음 자꾸 들려오는 일본의 위안부 망언이 생각났다.
어떻게해서라도 추악했던 그들의 과거를 지우려고 하는 저들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전후 독일처럼 유태인들에게 사과하고 뭔가라도 보상해주려고 노력했던 독일 국민들의 성숙된 모습이 일본에게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한편 우리는 얼마나 우리 과거의 아픔을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아픈 과거는 잊어버리는 것이 더 좋다고 하지만 똑같은 아픔을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역사의 뒤안길을 한번쯤 더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