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최혜정 l 우리의 잔치

2012-05-09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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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 비스타 하이스쿨 한인학부모회는 일년에 한번 학교 선생님과 스태프를 위해 점심식사를 대접한다. 또 한인 학생들들이 비한인 친구들에게 한국음식을 소개하며 자부심을 갖는 날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일에 찬반이 있어 반대하는 분도 있지만 나와 내 아이에게는 정말 신바람 나는 날이다. 동남부 살 때 학교 PTA미팅에 가면 백인들 틈에서 나는 꼭 ‘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열심히 듣고 무엇인가 돕고 싶었지만 벌써 조직적인 그들의 맨파워에 명함도 내밀기 힘들었다. 언어에서 오는 한계와 동양인 특유의 소심함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거의 항상 우울하게 돌아 왔었던 기억이 있다.

처음 음식을 준비하며 나도 숨쉬고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었다. 그런데 벌써 4년째, 이제 지칠만도 한데 이 행사를 앞두면 또 설레였다. 또 어떤 감동이 나를 흥분시킬까 기대됐다. 그 더운 날 뜨거운 그릴 앞에서 150파운드의 고기를 굽느라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고기냄새로 샤워하면서도 행복해 보였던 어머니들과 또 갈비를 옮기느라 수고하는 학년 대표들.. 그 전날 음식을 해서 이른 아침부터 잡채, 닭고기, 김밥, 샐러드, 떡볶이, 쌀국수, 전, 묵 등 한국 대표메뉴로 150명 분의 음식과 130개 도시락을 싸는 과정은 정말 웬만한 애정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더이상 우리아이만 잘 돌보아 주세요’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전체 학생의 10%도 되지 않는 소수지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그 작은 몸짓들이 우리를 더이상 주변인이 아닌 주인의식을 가진 작은 거인들로 바꾸어 놓는다. 이순간 나의 존재감은 당당함을 통해 내 삶의 과정에 솟구친다. 언어적으로 숫자적으로 소수라는 열등감이 함께하는 단결 속에서 튼튼한 고리를 만들어서 서로를 묶어주고 하나로 만들어서 우리의 잔치를 이끌게 한다. 올해도 고마워하시는 선생님들과 스태프들의 감사인사를 듣고 보니 약간 힘든 것에 비하면 큰 뿌듯함이 밀려온다. 나도 무엇인가 이 먼 이국 땅에서 누군가와 나누고,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은 그 어떤 보약보다도 나를 기운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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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정씨는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온 지 약 10년이 되었다. 몬타 비스타 한인학부회 차기회장으로 일하며 한국어반 개설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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