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채경열 ㅣ 인연에 대하여

2012-04-2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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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친구가 한국에는 딱 한 단어의 영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인연”이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있다는 주제로 대학교 입학 에세이를 썼었다. 물론 친구의 수려한 글 솜씨도 한몫했었지만, 나는 그녀가 인연이라는 아름다운 관념을 적용하여 자신의 삶에 대해 풀어낸 방식에 감탄했었다.
나 역시 수많은 아름다운 한국어 중에 다감한 느낌을 주는 인연이라는 단어를 가장 좋아한다.

그렇다면 인연이란 단어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사전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라고 정의내린다. 하지만 불가에서 처음 쓰기 시작한 이 단어는, 단순히 관계를 뜻하는 영어단어인 relationship 혹은 rapport의 일차원적인 관계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단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뜻을 내포하는데, 이는 모든 관계에 마음을 담는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를 반영한다.

이렇듯 모든 만남은 다 소중하다 여기지만, 그래도 만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인연이라고 감히 포장하고 싶은 특별한 만남이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처음 봐도 오래 봐왔던 친구같이 어색하지 않은 포근한 사람이 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어쩌면 때로 침묵이 더 편한 관계도 있다. 나의 오랜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내게는 그러한 이들이다. 감사하게도, 여전히 나는 그런 사람들과 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내 본연의 자신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면서 동시에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다. 지금의 나는 그들에게서 배운 조각들을 모아 비로소 형성되었다.

저번 주, 팔로알토에서 내가 좋아하는, 그러나 서로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남을 가졌다. 존경하는 언니, 제일 친한 친구, 그리고 아끼는 대학교 친구들을 만났었는데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일면식이 없었다. 그러나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들 같이 편안함 속에 즐겁고 건강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내내,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감히 인연이라 부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지 모른다. 마음 맞는 이를 찾는 것은 어렵다고 자위하며 푸념하는 시간이 늘어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 곁에, 같이함으로써 빛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이것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 아닌가 싶다. 빛나는 캘리포니아의 날씨와 같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은 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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