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김정옥 ㅣ 새로운 시작
2012-04-25 (수) 12:00:00
4월이 간다. 봄의 끝자락을 휘감아 쥐고 서둘러 가는 뒷모습이 어수선하다. 정신없이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나무들이 구석구석을 헤집으며 묵은 청소를 해 낸다. 뜨거운 여름 햇볕을 전신으로 잘 받게 되었으니 여름 채비를 단단히 한 셈이다.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좋은 결실을 위해 눈 감고 귀 막고 전력 질주만 하면 되겠다. 바람에 온통 몸을 내맡겨 털어 낼 줄 아는 나무는 참 좋겠다.
사람들의 자연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았던 지난 시대엔 60년만 살아도 큰 잔치를 열었지만 이젠 그 나이엔 축하할 일도 축하받을 생각도 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뒤로 한 발 물러설 나이였던 것이 지금은 새로운 시작의 시기로 여기게 되었다. 계절에 비유를 해 본다면 늦가을쯤으로 여겨졌던 시기를 다시 훌훌 털어 5월쯤에 가져다 끼웠다고나 할까? 건강이 좋아지고 수명이 길어진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 나이를 넘겨 보니 부드럽고 인자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까칠해지는 마음 때문에 힘드는 때가 있다. 점점 잃어 가는 자신감과 늘어나는 외로움 때문에 마음속 깊이 박혀 있는 가시를 빼내지 못해 마음을 갈구곤 한다. 생각과 말로는 내려놓자 비우자 하면서도 실제론 스스로의 고집과 욕심을 꺾지 못해 슬며시 찾아든 못된 친구인 섭섭병을 키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작고 사소한 일에 서운한 감정이 뾰족하게 선다. 성의없이 툭 던지는 말 한마디, 못 본 듯이 지나가니 무시당한 것 같고, 내 귀가 어두워 들리지 않은 것을 비밀 이야기를 한다 하고…그래서 예전 같으면 무심히 넘기던 순간순간의 눈길이나 표정에도 감정의 날을 세우곤 한다. 남편은 물론 자식에 심지어 손주들까지 그리고 밖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저도. 그 대상은 예측 불허다.
마음의 너그러움을 갉아먹고 크는 섭섭병은 가만히 두면 괴물처럼 커져서 자신을 벽 속에 가둘 수도 있는 참으로 무서운 병이니 빨리 털어 내야만 한다.
새로운 시작은 일어나 사람들에게로 나아가는 것이다. 혼자 쓸쓸히 지내며 쓴 뿌리를 씹으라고 부추기는 나쁜 이 병은 바라보는 시선을 나에게서 너와 이웃으로 바꿀 때 사라지는 것이다.
아주 소소한 봉사라도 찾아 내어 지금 당장 시작만 한다면 그 속엔 분명 나를 도울 또 다른 기쁨의 선물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칙이니까. 햇볕 쏟아지는 5월의 문턱을 넘는 우리 60들에게 달디단 기쁨의 열매가 맺히기를 기도한다. 어느덧 바람마저도 잦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