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미애 l 가장 힘들 때 발견한 가장 진한 감사

2012-04-20 (금) 12:00:00
크게 작게
2009년 9월 9일 수요일은 내 생애 잊지 못할 몇 날 중의 하나이다. 그날은 9가 3개나 겹친다고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해야 하는 날이라고 뉴스에서 아침부터 떠들고 있었지만 저녁에 들어온 남편의 얼굴빛이 백지장보다 더 하얗게 변한 것을 보고 직감적으로 ‘해고’라는 풀기 싫은 선물 보따리를 가져온 것을 알았다.

나도 이미 7월 24일에 해고가 돼서 집에 있는 형편이다 보니, 그 내놓기 싫은 보따리를 안고 집에 오는 남편의 발걸음이 어떠했을까…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이제 막 11학년을 시작한 큰 딸, 8학년인 작은 딸. 이제부터 해주어야 할 일이 많은데 이 상황에서의 실직은 부모로서의 존재에 위협까지 느껴졌다. 이 불경기에 엔지니어도 아닌 남편이 어디에서 직장을 구할 것인가? 당장 몇 달이나마 버틸 수 있는, 모아 놓은 돈도 없는데….

예정되었던 성경공부를 다녀와서 나의 현재 상황을 찬찬히 생각해 보며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내 삶의 우선순위를 적어 보았다.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과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씩 헤아려 보았다.


그랬더니 놀라우리 만큼 마음이 담담해지면서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재산이 “가족”이라는 것을 알았다. 건강하고 서로를 아껴주는, 남편과 두 아이들. 이제까지는 남편이 내 곁에 있고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고 서로에게 충실하게 살고 있었던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라 생각되었었는데 이것이 진짜 귀한 보물이라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었다.

그동안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을 물질의 어려움을 통해 보게 해주시고 또 얼마나 귀한지 알게 해주셔서 감사했다. “우리의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가 힘을 합쳐서 잘 견디어 보자. 이것을 잘 견디고 있으면 힘든 이 시기가 끝날 그날은 반드시 올거야”라고 아이들에게 이해를 구했더니 선선히 부모 마음을 헤아려 주었다. 큰 아이는 가장 바쁜 11학년임에도 일을 해 자기와 동생 용돈을 충당했다. 또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이 하던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지원도 받았다. 여기저기에 사랑의 빚을 많이 졌다.

그 해11월 나는 우리의 딱한 사정을 안 친지의 배려로 직장을 잡았고 남편은 플러밍 비즈니스를 아주 조심스레 시작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이 일을 통하여 가족의 의미를 알게 하시고 내가 현재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게 하시고 사랑의 빚을 몇십배로 갚을 수 있는 그날을 희망으로 주셔서 매일 매일을 기쁜 마음으로 가게 하신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