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미애

2012-04-06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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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를 마구 흔들어대는 봄바람

4월이 성큼 다가와 있는데도 아직도 출근길에는 두꺼운 겨울 외투를 벗어 던지지 못하고 있다. 따스한 봄 햇살을 즐기기보다는 으슬으슬 한기에 더 익숙한 나에게 있어서의 봄은 언제나 몸살 감기와 함께 찾아왔었다.

얼굴을 사납게 매만지고 가는 겨울 바람은 가슴속까지는 다다르지 못했는데, 화사한 얼굴로 가장한 봄바람은 가슴까지 파고들어 겨울 바람보다 더 싫었다. 개나리와 진달래를 지천으로 피어나게 하여 방심하게 해 놓고는, 늘 가슴까지 흔들어 대는 그 바람 때문에 나는 항상 심한 몸살을 앓았었다. 날씨는 왜 그리도 변덕스러운지, 봄인가 하여 설레이는 가벼운 옷 단장도 잠시, 어느새 겨울 외투자락을 여미게 하는 추위에 롤러코스터에 앉아 있는 것 같이 어지럽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변덕스런 봄 날씨 때문에 큰 아이의 감기는 아직도 낫지를 않고 그 아이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또 말씨가 곱지 못하다. ‘날씨가 왜 이리도 변덕스러운거야!’

‘생물의 생존 법칙’. 이 신비를 며칠 전에야 알게 되었다. 겨울 동안 뿌리에 저장된 자양분이 봄에 각 가지에 전달되어 새 생명을 피우기 위하여는 나무가 마구 흔들려야 하는데 봄바람은 그 귀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건강한 나무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 강한 바람이 필요하고 강한 바람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온이 변덕스러울 수밖에 없는 봄이 갖는 그 신비한 이치를 이제야 알게 되니 그동안 무지에서 비롯한, 나의 편안함만 생각하며 변덕스런 날씨와 봄바람을 거부했었던 나의 어리석음이 얼굴에 숯을 갖다 댄 듯 뜨겁게 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싫어, 변덕스러운 날씨 너무 싫어’ 만 되뇌이며 2월을 맞고 3월을 보내는 동안 모든 나무 가지 끝에는 어느새 연두색 예쁜 새순들이 앉아 있었다.

나무의 구석구석마다 자양분을 주기 위해 마구 흔들어 대는 봄바람이 필요하듯이, 내게도 시련이라 이름하는 봄바람이 나를 마구 흔들어 나에게 많은 자양분을 가져다 주리라. 이제는 가지가 꺾이도록 세차게 불어대는 봄바람이 사랑스럽다. 이제는 나에게 왔었던,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모든 힘든 일들이 가지끝에 있는 새 생명을 보게 하기에 너무 귀하다.

어느새 봄도 끝자락에 있다. 벚꽃이 지천으로 흩날리고 꽃가루가 어지러이 날려 눈을 따갑게 하는 사이 나무는 서서히 여름을 준비하고 있겠지. 철따라 아무 말없이 자연에 순응하여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나무와 같이, 아픔이 가져온 새 생명이 꽃을 피우고 결실을 맺고. 그런 철든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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