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초 심(初心)

2009-03-2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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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숙(수필가 )

‘bitter-sweet’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슬픈 감정과 좋은 감정을 함께 지닌 것을 뜻한다고 써 있다. 쓴맛, 단맛이란 입맛으로도 비유되는 우리 삶의 과정을 서술한 단어이기도 하다. 20여년 이끌어온 자영업체를 지인에게 넘겨주고 잠시 긴 휴식 시간을 택해 가까운 커뮤니티 칼리지에 등록을 했다.

갓 스물을 넘긴 꿈 많은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은 지도 4개월이 되어 간다. 때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늦은 시각까지 도서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많은 중년층 나이의 학생들과도 자주 얼굴을 대한다. 어느 날 뜻하지 않는 선택의 기로에서 마음고생 했을 그들에게서 열정적이고 순수한 초심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우리 마음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마음 밭이 있다.
겸허한 자세와 사랑으로 태양아래 어린 새싹을 키우듯 마음도 정성을 들이게 되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고운생각이 새싹처럼 자라나 언제나 마음 밭은 고운심성과 희망을 지니게 된다.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하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다듬어져 현재의 어려움도 극기할 수 있는 마음의 자양분을 갖게 된다.
며칠 전 맨하탄 5번가에 있는 닥터 오피스를 방문하기 위해 오랜만에 7번 지하철을 탔다. 많은 아시안과 히스패닉 이민자들로 가득찬 지하철에서 서로가 나란히 마주보고 앉아 그들의 표정과 특유의 몸짓을 보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양 볼에 키스를 하며 반갑게 껴 앉는 사람, 주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연신 흥얼대며 음악을 듣는 젊은이들, 손주 머리를 쓰담고 있는 중국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 등등.

자신들의 언어로 자유롭게 친밀감을 나눌 수 있는 지하철 공간은 언제보아도 복잡하고 소란해 보이지만 그곳엔 희망과 만남, 기쁨 그리고 어울림이 조화된 그들만의 퍼포먼스로 채워진다. 7번 지하철은 내게 특별한 사유를 간직한다. 이민초기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다. 푸근해 보이는 비슷한 나이의 옆 좌석 젊은 엄마에게 나의 고민을 털어 놓았을 때, 뜻밖에도
그녀는 생글 생글 웃으며 “글쎄요, 10년 전 부부가 좋은 관계로 만나 살다가 10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고개를 까우뚱 거리며 화두처럼 건넨 그녀의 말 한마디가 내게 가족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되곤 하였다.

그리고 생면부지의 누구였던가 “밥은 제 때 제 때 챙겨 드셔야 합니다, 낮선 땅에선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최고지요.” 어느날 늦은 시각, 지친 모습이 가련해 보였던지 옆 좌석에 앉은 중년 아저씨의 묵직한 따뜻한 말 한마디에 순간 목울대가 꿈틀거렸던 지난 시간이 있었다.색 바랜 무성영화처럼 스쳐가는 생면부지의 두 사람의 만남은 오랜동안 나에게 하심과 초심이란 두 마음을 지니게 했다. 요즘 내 주변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실질적인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말로써 위로한다는 게 때론 내게 마음아픈 가식으로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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