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추웠던 최악의 겨울도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간다. 올해만큼 이토록 봄을 간절하게 기다려본 적이 언제 또 있었던가.
만나는 사람마다 절절하게 ‘Happy Spring’ ‘Yeah Happy Spring’ 서로 인사를 나눈다. 지난 몇 주 전에 예고편으로 살짝 보여준 봄맛에 지하에서는 한바탕 비상벨이 울렸다. 뿌리들은 풀어지고 손을 뻗기 시작했다. 서로서로 흔들어 겨울잠을 깨우기에 바쁘다.
악독한 겨울이 끝날 것 같지 않아 모두 우울할 즈음, 우리 독서클럽에서 겨울의 한가운데로 봄을 초대하기로 했다. ‘Spring’ -Ali Smith-를 선정해서 읽기로 한 것이다.
작가는 영국이 유럽 연합에서 탈퇴한 후 독자적인 무역 및 정책 노선을 걷게 되면서 EU 회원국 국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고 이민 정책을 독자적으로 통제하게 되면서 빚게 되는 사회적 문제들을 제기한다.
브랙시트 찬반 국민투표가 실시된 2016년에 ‘가을’이 제일 먼저 출간되고 팬데믹이 한창인 2021년에 ‘여름’이 출간됨으로 총 5년에 걸쳐 계절 4부작 시리즈가 완성되었다. 작가는 영국과 유럽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많은 상을 받았다.
현존하는 작가로 브랙시트 이후 영국에서 살아가는 삶이 어둡고 절망적이며 분노를 일으키게 만드는 암울한 현실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전반적으로 작가는 프로답게 무거운 주제를 예리하고도 위트있게 풀어나간다. 정치적인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준다.
한때 잘 나갔던 주인공인 영화감독 리처드는 그의 정신적 멘토이자 연인이었던 패디를 잃고 슬픔에 잠겨있다. 패디는 아일랜드 노동 계급 출신으로 영국의 문제점을 다룬 드라마를 집필해 성공한 드라마 작가다.
젊은 시절 함께 작업한 이후로 리처드는 패디를 통해 세상을 보고 배우고 존경심을 갖게 된다. 패디는 리처드에게 그가 결정하기 힘든 상황에 부닥쳤을 때 ‘상상 속의 딸’과 대화하며 해결책을 찾아 마음의 위안을 받는 개념을 선물한다. 패디를 잃고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리처드는 상상 속 딸의 조언으로 충동적인 여행을 떠난다.
한편, 이민자 추방센터에 마법처럼 침투해 재소자 처우를 개선한 12살의 플로렌스, 기가 막힌 우연처럼 이 이민자 센터에서 근무하는 감시관 브리타니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채 난민과 이민자들을 감시하던 브리타니는 어린 플로렌스를 통해 난민과 이민자들을 인간으로서 받아들이고 대해줄 것을 배운다. 그리고 작가는 예술의 힘을 빌려 경직되고 고착된 시야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으로 세상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자연의 순리에 따른 계절의 변화, 봄이 오면 어김없이 싹은 터오르고 생명이 약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간의 시야를 넓혀주는 자연의 섭리에 우리는 숙연해진다.
절망 끝에 희망이 찾아오듯 올해도 봄은 문을 활짝 열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손에 꼽을 만큼 최악의 봄이야 틀렸어,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운 봄이야. 그렇게 춥더니, 이렇게 푸르러” 작가의 언어 감각이 번득인다.
T.S.Eliot의 대표 시 ‘황무지’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길러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 섞으며/ 무감각한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우리 기대해 보자. 죽었다고 생각했던 땅에서 과연 무엇이 피어날지, 또 우리는 어떤 꽃을 피워낼지 따뜻한 햇살을 기다리며 고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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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숙/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