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말이나 글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도약으로 가득 차 있다. 흘러간 세월 속 수많은 만남과 이별에 ‘우연’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기도 하지만 시간의 길목에 서서 지나온 기억을 되짚어보면 그 안에는 언제나 ‘필연’이라는 단단한 의미가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에게 시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과 나의 관계가 그러하다. 아주 오래전, 시(詩)에 대한 갈망이 내면을 가득 채웠던 무렵 나는 바쁜 일상을 틈내어 서점에 들렀다. 수많은 책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던 시집 한 권을 집어 든 것이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녀의 시집을 만난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운명의 필연적인 부름이었을까?
그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우리는 스승과 제자라는 귀한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날 그 서점에서 우연히 내 손에 잡힌 시집은 내 심장의 밭에 떨어진 씨앗이었고, 그것이 스승님과의 필연적 인연으로 자라날 줄은 그때 미처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필연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서로를 대하는 ‘지극함’이라고 믿는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지난 긴 세월 동안 선생님과의 인연은 시어(詩語)를 통해 서로의 영혼을 비추는 통로가 되었다. 선생님은 내게 시를 가르쳐 주셨고, 나는 시를 통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시적 감성을 길어 올릴 수 있었다.
만물이 각기 지으심을 받은 목적이 있듯이, 내 삶에 찾아온 시와의 만남도 창조주의 세밀한 설계도 안에 이미 그려져 있던 장면이었다. 서점에서의 그 순간은 흩어진 점들이 모여 하나의선을 이루듯 필연적인 만남으로 이어졌고 그 지극한 인연을 통해 나는 나를 향한 그분의 섭리인 ‘글을 통해 영혼을 비추는 일’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필연의 진정한 가치는 삶의 고비에서 그 지극함을 서로 나누는 데 있는 것 같다. 선생님께서 노환으로 병원과 요양원을 오가며 지내시던 마지막 2년 동안에 나는 가끔 그 곁을 지키며⋯
그녀의 가쁜 숨소리조차 때로 시처럼 읽어 내려갔다. 돌아가시기 불과 며칠 전 의식이 가물거리던 순간에도 선생님은 곁에 있던 청색 작은 수첩에 떨리는 손으로 시상을 적으셨다.
그것은 육신의 생존을 넘어선 시적 필연의 모습이었다. 육체는 소멸의 섭리를 따를지언정 정신은 시라는 질서 속에 머물고자 했던 그 처연한 뒷모습을 보며 나는 확인했다. 그녀에게 시는 선택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였고 우리가 만난 것은 생의 마지막 문장을 함께 써 내려가기 위한 우주적 약속이었음을 말이다.
선생님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장례를 치르는 순간까지, 그것은 단순한 도리를 넘어 20여 년 전 서점에서 시작된 우연을 거부할 수 없는 ‘사랑과 필연’으로 매듭짓는 과정이었다. 정신의학자 칼 융(Carl Jung)은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지만 의미 있게 연결된 사건들을 ‘동시성(Synchronicity)’이라 불렀다.
내면의 갈망이 외부의 시집과 만난 그 순간에 우연은 이미 필연이 되어 내게 다가온 것이다. 20여 년 동안 계절이 스무 번 바뀌는 사제의 인연 속에서 나는 시가 단순히 언어 창작의 기술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지극함임을 배웠다. 이제 나는 안다.
내 삶에 찾아왔던 그 모든 우연은 사실 단 한 순간도 빠짐없이 나를 지금까지 인도하기 위한 필연의 조각들이었음을. 그 오래전 한권의 시집에서 시작된 가느다란 우연의 실타래는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필연으로 묶여 내 마음속에 울창한 나무로 자라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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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