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인간관계의 모험’

2026-04-07 (화) 07:59:30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크게 작게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혐오와 불신의 벽을 꿰뚫어 그 자신에 대한 모험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삭개오의 사건에서 생생하게 실증되어 있다.

당시 거기에 모인 무리들의 비판을 무시하고 예수는 삭개오의 집에 가서 한 손님으로써 그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이 단순한 행동에서 예수는 어떤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단지 예수는 삭개오를 신뢰하고 그가 원하는 교제에 대한 영적인 요구와 새롭게 되기 위한 실제적 요구를 돌봐주었다. 예수는 이 파격적이고 모험적인 방법으로 ‘아웃사이더’를 용납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로버트 레슬리의 ‘Jesus and Logotherapy' 중에서)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인간 관계론의 혁신적 이론을 개척한 인물이다. 부버는 말했다. “인간 변화의 핵심은 인간관계의 질에 달려있다. 사회의 보편적 이해와 용납의 기준을 넘어서는 파격적 관계를 열어나갈 때 사람은 변화한다. 인간관계의 행동 양식에 있어서 인간사이의 관계를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 나갈 때 그곳에서 진정한 치유가 일어난다.”

사람을 하나의 ‘그것(It)'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당신(Thou)'으로 다룰 때 의미 있는 인간관계가 형성된다고 부버는 주장한다. 부버는 이기주의와 상업주의가 강화될수록 관계의 병이 생기고 인간은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단언했다.

삭개오는 자신의 지능과 수단으로 부를 이룩한 관리였다. 삭개오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도덕 이념을 배반했고 부정직하고 불의한 일에 가담했다. 삭개오는 공동체와의 관계성을 잃었고 항시 인간관계의 불안과 긴장 속에서 살았다.

마틴 부버의 방식으로 말한다면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와 그것’의 관계를 인생관의 중심을 삼고 살았다. ‘나와 그것’의 관계는 서로를 이용하려는 이기주의적 관계다. ‘나와 그것’의 관계는 인간의 인격을 위태롭게 만든다. ‘나와 그것’의 관계로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 마침내 삭개오는 공동체로부터 소외되었고,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것보다 사회적으로 잃은 것이 더 컸다.

이런 삭개오를 찾아와 만나주신 예수는 ‘나와 너’의 관계를 몸으로 실천했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는 상대방을 무조건 신뢰하고 포용한다. 친 형제처럼 대한다. ‘너’에 대한 ‘나’의 인격적 관계는 포괄적이고 직접적이어서 친족 공동체적 일체감을 불러일으킨다.

예수가 삭개오를 마주한 순간 ‘기업 무를자’의 책임감으로 충만했고 소외자 삭개오는 예수의 새 가족이 되었다. 예수의 인간관계는 언제나 거룩한 모험으로 충만하다. 혁명적이고 인격적이다.

이런 일은 삭개오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호수에서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해 허탈한 마음으로 낙심해 있을 때 예수님이 그에게 다가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공감의 말씀을 해 주셨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그물을 던졌고, 그곳에서 많은 고기를 잡아 올렸다. 그때 베드로의 입에서 외마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렇게 해서 갈릴리의 평범한 어부 베드로는 성(聖)베드로가 되었다.

제러미 러프킨는 그의 책 ‘공감의 시대’에서 말했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성의껏 들어 준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당장 눈가가 촉촉해진다. 다름 아닌 기쁨의 눈물이다. 그는 속으로 말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다 있군요.]” 인격적 모험 없이는 진정한 인간관계의 형성은 어렵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