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깊은 밤중에 울려 퍼지는 전화벨 소리는 좋은 소식보다는 불길한 예감을 먼저 떠오르게 한다.
“헬로우!” 잠에 취한 채 응답하니 “하이, 엄마” 작은아들의 음성이다.
“아이구, 형진이?” 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지구의 반대쪽, 전쟁터 이라크에서 걸려온 작은아들의 첫번째 전화는 이렇게 반가움과 안도의 순간이다.
시계가 새벽 3시를 가리키는데 그곳은 오후 1시란다.
어떻게 지내니, 음식은 어떻고, 날씨는 얼마나 더운데, 위험하지는 않니?. 한국말이 서툰 그 아이에게 두서없이 묻는 엄마와는 반대로 침착한 어조로 일일이 대답하며 안심시키는 아들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2년 전부터 내셔널 가드에 입대해서 제 임무에 충실하다가 지난 부활절에 이라크로 떠난 아들이다.
TV 뉴스를 통해 이라크의 참상을 전해 들으며, 안타까운 심정일 뿐 내 자식들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겨 왔는데 막상 아들이 그 곳으로 떠나자 TV 뉴스에 귀 기울이며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기도하곤 한다.
TV와 컴퓨터의 보급이 홍수를 이루어 혼자 즐기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들은 친구들과의 사귐도 없이 운동마저도 혼자 타는 자전거로 족했다. 아이는 나이를 먹을수록 자기만의 아성을 쌓아가며 타인의 의견이나 협조에 불응하는 옹고집이 되어 갔다.
제 주장대로만 행동하는 것이나 불만에 찬 표정으로 마지못해 직장에 출근하는 모습에 우리 부부는 야단도 쳐보고 사정도 하며 그 아이의 밝고 미소 띤 얼굴을 기대해 보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정신자/주부
그러던 아이가 내셔널 가드에 지원하고부터는 하루가 다르게 표정이 밝아지고 부지런해졌다. 한달이 멀다하고 먼 타주로 훈련이나 출장을 가며 바쁘고 활기 찬 모습을 대할 적마다 괜한 기우였음을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우연의 일치지만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리는 부활절에 이라크행 비행기에 오른 아들은 지금까지의 무미건조한 생활을 탈피하고 아무런 보호막 없는 위험 속에서도 참고 견디는 지혜와 용기를 터득하여 다시 태어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오늘도 e-메일로 보내온 군복 입은 그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안도의 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