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이 그리워지는 계절
2005-06-30 (목) 12:00:00
▶ 살며 배우며
▶ 유설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뿌옇게 습한 공기를 자욱히 피워 놓은 안개 낀 하이웨이를 조심스레 달려간다. 창 밖으로 스치는 검푸른 나무숲의 풍성함이 바라보는 마음까지 풍성해지는 이른 새벽. 골프장에서 친구들과 만나는 날이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작은 물방울을 매단 채 남들이 미처 밟지 않은 촉촉이 젖은 푸른 잔디밭을 여덟 개 발자국을 수없이 남기며 하늘 저편으로 조그마한 하얀 공을 날리며 힘차게 걷기 시작한다. 살랑이는 상큼한 바람과 물씬 풍기는 풀 내음, 탐스럽게 피어있는 노란 들꽃이 방긋 웃어주는, 행복을 여는 시간이다.
낮 기온이 90도를 넘는다는 일기예보에 맞춰 노출을 삼가며 나름대로 준비했지만 벌써부터 습한 더운 열을 뿜어대니 영락없는 사우나다. 오늘은 날씨 탓에 걷기를 포기하고 카트를 탔지만, 평소에는 친구들과 골프백을 배낭처럼 등에 메고 어깨를 나란히 걸으며 나누는 다양한 대화 속에서 삶의 활력소를 얻곤 하다. 일부러 카트를 안 타는 이유는 많이 걸을 수 있는 효과있는 운동을 하기 위함이며 걸을 때마다 등에 진 골프백이 허리와 엉덩이 부분에 출렁거려주니 남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절로 맛사지가 되어 기분 좋고, 골프백을 양어깨에 짊어질 때 양팔에 들어가는 힘이 양어깨와 팔관절에 많은 도움을 주며, 등산을 겸해 하는 좋은 운동이 되니 저절로 다이어트도 되고 경제적이기도 하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골프장에 자주 나타나 우리를 흥미로운 동물의 세계로 안내하는 선한 눈망울을 가진 사슴들도, 바위 틈 사이에 굴을 파놓고 얼굴만 빼꼼 내밀고 눈치보는 여우새끼들의 귀여운 모습도, 멍청한 느림보 두더지들도, 발자국 소리에 지레 겁을 먹고 목을 움츠리는 거북이들도, 유난히 하얀 엉덩이를 뽐내듯 깡충거리는 들토끼들도, 새끼 사랑을 아끼지 않는 거위들의 행렬까지도 오늘은 통 볼 수가 없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를 피해 나들이를 삼가며 그늘 밑에서 쉬고 있는 중일 테니 오늘은 참 아쉬운 날이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가릴 수 있는 나무 그늘이 있어 쉬어갈 수 있는 자연의 고마움과 덤으로 얻는 지혜와 낭만이 있어 삶이 즐거워지기도 한다.
이민의 고달픈 삶을 사는 우리들이지만 늘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어렵고 외로워할 때 그늘이 되어주는 넉넉한 마음과 힘들고 고달팠을 때 그늘이 되어준 분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 섬기면서 사는 삶 속에서 서로서로가 자기 성장과 충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삶의 형태는 같을 수는 없지만 한번 주어진 삶이 더 아름답고 행복한 날들로 이어갈 수 있진 않을까. 그늘이 그리워지는 계절에 잠시 생각해본다.
유설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