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상희 교수의 ‘문화와 삶’] 돌을 깨뜨리는 감사 근육

2026-06-04 (목) 12:00:00 이상희 UC 리버사이드 교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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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적응력과 생존 의지는 내가 매 학기 끌고 가는 강의와 연구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는 개념이다.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과 수십만 년 전 유라시아의 빙하기에 살아남은 고인류 조상으로부터 받은 생존 의지는 우리 몸에 새겨져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사소한 일상에서 인간의 초인적인 힘과 마주했다. 이 모든 일은 약간 미련한 사고에서 시작되었다.

발치에 앉아 있는 강아지를 쓰다듬고 무심코 벌떡 일어섰을 때다. 주방의 아일랜드 식탁 아래로 몸을 굽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순간 잊은 대가로, 내 머리는 식탁 위 대형 석판에 그대로 들이받혔다. 묵직한 석판이 흔들릴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다. 머리가 띵했지만, 손으로 만져보니 피는 나지 않았고, 통증도 심하지 않았다. 내 머리가 돌보다 단단한 모양이라며 멋쩍게 웃어넘겼다.

일상생활이 서서히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학기 말이자 학년말이라 모두가 지쳐 있는 시기였기에, 처음에는 그러려니 생각했다. 진짜 위기는 이틀 후에 찾아왔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침대에 쓰러진 이후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한두 걸음 떼려 하면 방 안 전체가 빙글빙글 돌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독감인가 싶어 테스트를 해보았지만 음성이었다. 원인 모를 무력감과 어지러움 속에 식은땀을 흘렸다.


하필 그날 저녁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였다. 딸아이의 졸업 연주회가 있는 날이었고, 나는 피아노 반주자로 무대에 함께 오르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가 연주할 곡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Spring)’. 생전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셨던 곡이었다. 도저히 움직이지 않는 몸을 침대에 뉘어둔 채 간절히 기도했다. 평생 철인 같은 정신력으로 삶을 일구셨던 아버지의 그 단단한 정신력을 딱 다섯 시간만 빌려달라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봄의 선율을 꼭 들려드리고 싶다고 말이다. 내 모습을 본 남편과 딸아이는 “혹시 뇌진탕 아니냐”라며 걱정했지만, 나는 설마 했다. 그 정도로 뇌진탕이라니.

연주회 두 시간 전, 온몸의 기운을 쥐어짜 내어 겨우 차에 올라탔다. 연주회장에 도착해서도 차 안에서 시체처럼 누워 대기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연주 시작 한 시간 전, 거짓말처럼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흐릿하던 정신이 또렷해진 것이다. 무대 위에서 어떻게 건반을 눌렀는지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우리는 무사히 연주를 끝마쳤다. 이어진 리셉션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정확히 약속된 다섯 시간이 지나자마자, 나는 다시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처럼 침대 위로 고꾸라졌다.

이후 사흘 동안은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결국 응급실을 찾아 정밀 검사와 함께 ‘뇌출혈은 없는 뇌진탕’이라고 진단받았다. 일주일이 지나 샤워를 하고 제 모습을 찾기까지, 나는 어지러움 속에서 계속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만약 연주회가 끝나고 곧바로 정상 생활로 돌아갔다면 나는 이 상황을 “그저 어쩌다 생긴 일”이라며 흘려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연주회가 끝나자마자 다시 쓰러진 몸을 보며, 다섯 시간이 얼마나 극적이고 특별한 시간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위기 상황에서 분비된 아드레날린의 폭발이었거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강인한 유전자의 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저 우연의 일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과정을 ‘기적’과 ‘감사’라는 렌즈로 바라보기로 했다. 나를 어여삐 여기신 절대자가 딸의 소중한 무대를 지켜주시기 위해 허락하신 특별한 유예기간이었음을 믿는다. 연주 전후로 삼 일씩 자리보전을 하면서, 그 다섯 시간의 기적을 감사하게 하려는 장치였음을 고백하게 된다.

내 삶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의미를 찾고, 불행 속에서도 감사할 거리를 발견해 내는 연습은 내가 삶에서 얻은 큰 보너스다. 세상에는 객관적으로 감사할 일보다 원망할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항상 감사하라”는 말을 듣고 그깟 것쯤이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감사하기란 쉽지 않았다.

감사는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감정이 아니라, 쓰지 않던 몸의 근육을 단련하는 과정과 같다. 매일 의식적으로 스트레칭을 하듯, 내 삶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감사할 조건을 찾아내는 반복적인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만 ‘감사의 근육’은 비로소 단단해진다. 이번에 체험한 뇌진탕의 기억은 내 삶의 감사 근육을 한 번 더 단련시킨 시간이었다.

<이상희 UC 리버사이드 교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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