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와 나

2025-04-04 (금) 06:3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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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수정 S_PACE 상담소 (구 좋은 마음연구소)

마음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만나면 대부분 “내가 어려서 엄마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서…“ 라며 시작하신다. 그때 그들의 어머니들은 “나는 최선을 다했다.” 라며 펄쩍 뛰신다. 그런데 곧 그녀들도 “사실은 제가 어려서 엄마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서…"라며 고백하신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신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따뜻한 밥상을 차려도, 열심히 가르쳐도, 자녀들에게 투자해도, 결국 자녀들에게 ‘엄마는 공감해주지 못했다’, ‘엄마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 곁에 없었다’고 원망을 듣는다. 자식들은 기막히게도 자신들이 받지못한 결핍을 기억해 내고 그것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만들어 버린다.

알고보면 그 엄마 또한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자식에게 주려고 한 거다. 자신의 어머니에서 받지 못한 결핍. 그건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온 거고 그건 또 그녀의 어머니의 어머니… 이렇게 올라가다 보면 인류의 처음과 만나게 되는 건 아닌지, 그래서 그 상처는 자궁에서 태어난 전 인류의 상처가 아닐까 상상해 본다.
아기들은 태어날때 자지러지게 울어댄다. 모든 것이 제공되던 따뜻한 자궁에서 나와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지만 그보다 모체가 날 밖으로 밀어내는 것에 대한 분노, 탯줄이 잘리면서 하나였던 우리가 둘이 되는 고통이 아닐까. 겨우 따뜻하고 말랑한 엄마의 젖에 의지해보지만 곧 젖떼기의 고통이 찾아온다. 이렇게 엄마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기대하게 해 놓고 결국은 다 주지 않는 그런 잔인한 존재인 거다.

엄마라면 당연히 주었어야 했고 나는 당연히 받았어야 했다고 믿는 것들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서 오는 결핍과 상처들이, 사실은 결국 내가 나 되기 위한 그리고 나의 성장을 위한 상흔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다소 마음이 누그러들지는 않을까? 마음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면 그제야 양수의 따뜻했던 보호, 목마름을 채워주던 젖의 향기가 떠오르게 됨을 잊어서는 않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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