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세상은 참으로 복잡하고 다양해져서 시대의 흐름을 나타내는 유행을 딱 부러지게 단정 지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월남전 때에는 반전 바람이 대학가를 휩쓸어 소위 히피들이 텁수룩한 머리에 변색이 된 청바지를 입고 마리화나를 피웠다. 그리고 이란에 억류당한 주미 대사관 직원들을 구출하려다 실패했을 때에는 다시 서부 개척시대의 프런티어 정신 운운하며 그 표상인 카우보이 복장이 유행했었다.
나도 그때 부츠는 아니었지만 굽이 높은 가죽 반장화를 신었고, 청바지에 버클이 큰 가죽 혁대에 등과 가슴에 덜렁거리는 후린지 술(fringe)에 똑딱이 단추(snap button) 셔츠를 입고, 소매를 반 걷어 내고 챙이 큰 모자를 쓰고, 권총을 차고 다닐 수는 없었기에 자그마한 손가방을 들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내 행동이 어처구니가 없어 보이겠지만 당시 나는 서울과 LA, 샌프란시스코를 왕래하며 패션 업계의 사람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그런 복장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에이즈로 죽어 나의 이런 생활도 곧 끝났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는 근래에 보자니 젊은 아가씨들이 청바지를 다시 입고 다니는데 헤어진 정도가 아니라 찢어지고 구멍이 난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 이게 무슨 시대의 흐름의 표현인가 의아했기 때문이다. 사실 유행이란 옷 못지않게 신변잡화에 더 관심들이 많고 그중에서도 머리 장식, 귀고리, 목걸이, 반지, 손톱장식보다 핸드백이 제일인 듯싶다.
여기서 졸부와 루이비통(Louis Vuitton)을 잠깐 이야기하려 한다. 졸부란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을 칭하는 것으로 서울 강남 개발 붐이 생겼을 때에 김장철에 무 배추나 심어 나룻배에 실어 서울에 내다 팔던 사람들이 밭이 금싸라기 땅이 되어 부자가 된 사람들을 가리켰던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그 때에 등장한 것이 루이비통이었다.
루이비통은 코끼리 가죽으로 여행용 가방을 만들어 파는 회사로 꽤나 명성을 얻고 있었다. 코끼리 가죽은 열대 사막에서나 북극 혹한에서나 흐물거리거나 뻣뻣해 지지도 않고 또 가죽이 질겨서 여행용 가방의 가죽으로 최상이었다.
그런데 코끼리 상아의 수요가 늘고 특히 동양 사람들이 상아 뼈로 도장을 만들어 코끼리가 멸종 될 것 같자 미국의 동물 보호국(Fish & Wild Life)에서 코끼리 상아나 가죽 제품 수입을 금지시켰다. 그러자 프랑스의 한 회사에서 코끼리 가죽과 같은 품질의 특수 비닐을 만들었고 루이비통에서 여행용 가방뿐만 아니라 여러 핸드백을 만들어 비싼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았다. 그때가 강남 졸부들이 부자임을 자랑하고 싶었을 때와 일치했으니 루이비통 가방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그때에 졸부들의 인기 핸드백 순위를 점쳐본다. 일등 루이비통, 이등 샤넬, 삼등 입센 로랑일 것이며 그 이유는 남들이 비싼 핸드백 들고 있는 걸 쉽게 보이는 순서란 말이다.
그런데 한국 여성들에게는 아직도 졸부 유전자가 들어 있는지 전 현직 대통령 부인들 그리고 꽤나 이름을 떨치는 여자들이 이 명품 핸드백 때문에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제 한국은 중진국 정도가 아니라 선진국이 되었으니 졸부 나라는 아니지 않는가? 그러니 졸부 행세는 중국 정도 사람들에게 넘기고 점잖고 품위를 지키는 핸드백을 지녀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이곳 버지니아의 한인 여인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들은 루비비통 같은 소위 명품가방보다는 소위 점잖고 품위를 지키는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것이 대부분인 것 같다. 유심히 보면 타이슨스 쇼핑 몰의 루이비통이나 샤넬 점포에 길게 늘어선 여자들 대부분 중국계 여자들처럼 보이니 말이다.
<
이영묵 문인/ 맥클린,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