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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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에서 쉼을 얻으며

2024-07-21 (일) 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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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 검색해 본 아이슬란드 6월초의 평균날씨는 “춥고 바람불고 강한 비가 오락가락” 이란 불안한 예보를 안고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카비크의 골든 서클까지 왔다.

씽벨리어 국립공원과 유황냄새가 심한 간헐천 게이사르 지역을 지나 굴포스 폭포를 감상하는 중이다. 하늘의 반을 덮은 폭포수가 하얀 분말을 일으키며 웅장한 우뢰 소리와 함께 바다 속으로 떨어지고 용암층 위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요란한 소리가 온 천지를 진동하는데 이상하게 귀가 먹먹하고 조용해진다. 무아경(無我境)이랄까. 영혼이 날아가 버린 듯하다.

그 신비한 광경을 보던 사람들도 너무 멋져서 환호하며 감탄하고 있는데 밝은 표정이지만 경건함이 보였다. “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세계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온 땅이 여호와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시편의 시처럼 그 분 앞에서 말을 잃고 경배하고 있는 듯했다. 뭔가 표현해야하는 그 공간에서 나의 존재는 한없이 왜소했고 언어는 궁했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깊은 겸손의 미학을 배우는 순간이었다.

세계 최초의 의회제, 아이슬란드 국회가 930년에 이곳에 설립해서 1789년까지 계속되었다는 씽벨리어 국립공원의 핵심지가 지구 지각판중에서 유라시아판과 북아메리카판이 만나는 경계에 위치해 있어서 해마다 1-2Cm씩 틈새가 벌어진다고 한다. 외계행성에 온 것 같은 가파른 절벽과 깊은 해곡(海谷)이 환상적이다. 단층선을 따라 길게 조성된 경계를 걷는 기분이 묘했다.


어제는 북서쪽 아이슬란드의 어촌마을 이사표드르로 갔었는데 그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산을 깎아 만들었다는 3.3마일의 길고 깜깜한 터널을 지나고 닿은 곳은 출렁이는 검푸른 파도에 화사한 햇빛이 반사되어 다이어몬드처럼 반짝이는 해안가였다.

상어가죽을 입은 원주민을 재현하며 어부와 그들이 쓰던 어선과 역사를 보여주는 관광타운이다. 18-19세기 살던 나무집도 보존되어 있고 수백년 됨직한 가파른 나무계단도 올라가서 과거에 쓰던 낚시도구, 연장, 옷과 부엌용품, 티스푼, 그림등이 전시된 박물관을 보았다. 다시 산을 구비돌며 오르던 버스가 선 곳은 농경지가 보이고 구름이 내려앉은 눈덮힌 산 밑이다. 황량한 산등성엔 보라빛 루핀 꽃이 예쁘게 장식되고 계곡을 타고 힘차게 내려오는 빙하소리가 시원하게 들리는 하구(河口)였다. 거기서 관광객들은 가이드가 떠 준 계곡의 물을 컵으로 시식했는데 누구의 손도 타지않았을 깨끗하고 성스러운 생수라 그런지 온몸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그 물을 마시면 젊어진다길래 꿀꺽 마셨는데 효과가 있었나? 피곤이 가셨다. 역사깊은 루테란교회도 방문해서 아이슬란드 종교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 해주던 아가씨를 만났는데 그녀의 피부는 정말 뽀얗고 이국적 신비로움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아이슬란드는 북극 바로아래 위치한 빙하와 만년설의 섬이라 그런지 얼음과 불의 땅, 빙하동굴, 용암지대와 호수, 폭포, 불루 라군 온천 등 경이로운 세계임을 느낀다. 잦은 화산폭발로 인해 검은 모래, 현무암이 널려있는 검은 땅에 가끔씩 갸냘픈 몸매로 희고 핑크색인 꽃들, 종모양의 보라색, 노란꽃들이 자기 때를 알고 피어나고 있었다.

세로로 줄무늬를 이룬 바위산은 세월과 바닷바람의 고된 흔적이 어우러진 예술작품이 되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청록빛을 띤 맑은 호수 위에는 붉은 지붕의 교회와 그 옆에 성냥갑처럼 옹기종기한 예쁜 집들이 반사되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티없이 맑은 하늘, 넓은 대지에서 자유롭게 자라는 말과 양들이 멀리서 풀을 뜯고 있는데 그 모습이 정겹고 평화로와서 자꾸 사진을 찍어댔다.

천상의 커튼이라 부르는 오로라는 형형색색의 발광이 지구 북극권과 남극권에서 관측되는 천문 현상이라 옛날부터 이 곳에서 볼 꿈을 꾸었지만, 겨울에만 나타난다고 하니 괜시리 해가 지지 않는 밤 하늘만 쳐다보게 된다. 태양은 지구 어느 곳에도 뜨고 지지만 각지에서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그래도 검붉은 파도를 타고 출렁이는 배 안에서 새벽3시에 사진을 찍었는데 진홍색 햇빛과 짙은 회색구름이 하늘을 수놓은 멋진 추억의 사진이 되었다.

섬의 음식이 궁금해서 아이슬란드 고유맛이라는 핫덕과 랍스터 스프, 연어요리를 먹어 보았는데 큰 감동은 없었다. 그러나 새까만 호밀로 만든 빵과 Skyr 이란 요구르트, 소금에 절인 대구, 또 이 곳의 특별한 새인 퍼핀(Puffin)에 대한 아쉬움은 남았다. 발과 부리가 오렌지색이고 등은 검고 배는 희어 그 모습이 아주 귀여운데 일부일처로 의리도 있고 한 번에 하나씩 알을 낳아 암수컷이 번갈아 돌보고 헤엄도 잘쳐서 깊숙한 바다 물고기도 잡는다니 신통하게 느껴졌다.

북유럽을 포함한 2주의 크루즈여행은 형제들이 있어서 더욱 행복했다. 아이슬란드는 예상외로 날씨가 좋아서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을 떠나 고요한 설경, 동화같은 마을에서 영혼에 쉼을 얻으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세상은 한없이 넓고 아름다운데 알아갈수록 졸아드는 자신을….

<최수잔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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