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하고 무엇이든 여유가 있어야 안심이 되는 졸갑이다. 쌀도 한 가마쯤 더 있어야 배가 덜 고프고, 묵혀서 벌레가 생겨도 잡곡도 한 봉지씩 더 있고, 불고기, 삼겹살, 생선도 꽁꽁 얼려둔다.
또한 여자가 더 오래 산다지만 내가 남편보다 연상이니까, 나는 언제 갈지 모르니 남편것은 무엇이든 넉넉히 쟁여야 흐믓했다. 그러다 공무원이 되고나니 나라에서 온갖 옷과 신발을 전부 준 뒤로는 한국에서 건너온 튼튼한 솜바지, 내복, 털모자, 양말, 작업복들이 선반에서 삭아간다. 남편이 참다 못해 이제는 은퇴 할 나이인데 저거 다 쓰려면 구십까지는 일해야한다며 무엇이든 마누라 맘대로 사들이는 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심통을 낸다.
그러나 주변엔 남편처럼 키 크고 비쩍 마른 남자가 없으니 결국엔 아끼다 똥됐다. 그래도 나중에 필요한 곳에 무엇이든 기부하면 복 받을거라 하면서 마당 가꾸기에 진심인 남편을 살살 꼬셔서 아주 비싼 잡초 제거제, 잔디 영양제와 함께 얇고 편안한 잔디깍기용 바지도 함께 사왔다.
예전에 나이 든 형제님 댁에 가게 되면 크고 멋진 식탁에 온갖 것들이 다 올라와 있었는데, 약, 필기도구, 책, 과자, 고구마, 과일까지 점점 늘어나면서 아무래도 우리집 식탁도 작은 것 같다. 이제는 무엇이든 눈에 안 보이면 또 산다. 샅샅이 찾아도 분명히 없어서 샴푸랑 로션을 꾸러미로 사서 창고에 넣으려니까, 속에서 나오고 또 나오는 이상한 일이 생긴다. 이제는 무엇이든 사기전에 다시 살펴서 1개씩만 여유로 더 사고 집에 있는 건 무엇이든 남김없이 끝까지 쓰고 좋은건 아낌없이 나누어야겠다.
성당에서 남편이 구역장을 맡고나니 카톡 담당인 내가 전달 할 카톡이 많다. 한 달에 몇번이나 때로는 하루에 몇번씩 장례미사를 전달하며 생각에 잠긴다. 지난번에는 마흔을 넘겨 부모와 부인, 자식들보다 앞서가신 형제님을 전하면서 어쩌나 하며 눈물이 앞섰다. 아마 그보다도 일찍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와 청상과부가 된 울 엄마와 큰소리로 웃는 걸 본 적 없는 할머니도 그랬겠지하며 기도를 올린다.
친정 엄마는 칠십 중반에 수술을 받고 휴유증으로 중환자실에서 몇달 계시느라 제대로 마지막 이별인사도 못 나누었다. 나도 엄마를 닮았는지 똑같이 육십 중반에 무릎 수술을 받고 지금은 잘 다니지만, 엄마처럼 등뼈가 내려앉아서 아플까 걱정하면서 관리를 잘하면 괜찮다하면서 운동하며 항상 조심하며 지낸다.
시아버지는 칠십 중반에 간에 문제있다고 진단받고 6개월만에 돌아가신지라, 남편이 피곤해서 가끔씩 눈동자가 노래지면 내 가슴은 철렁철렁 내려앉아 간에 좋다는 미나리와 생간을 사러간다.
시어머니는 깃털처럼 가벼워 공원을 다람쥐처럼 오르내리며 총명했지만, 구십이 넘으면서는 쇠약해지고 움직이지를 못하니 뼈만 남아 쾡해져서 자식들을 알아보지 못했고, 동네에 있는 노인병원에서 몇년을 지내며 그나마 돌아가며 찾아오는 자식들이 있었지만 모두가 지쳐 있었다. 아버님 옆에 모시고 내려오던 날에 온 가족이 모여서 서로 수고했다며 산채정식을 나누고 헤어졌다. 그 뒤로는 오래 된 시엄마 자개장이 있던 방도 없어지니 이젠 한국엔 꼭 갈 일이 없어졌다.
오늘은 나와 같은 나이와, 같은 영세명의 베로니카의 부음을 전하며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나 보태려고 한다. 예로부터 좋은 잔치에는 안가도 궂은 일에는 반드시 가야 한다고 한다. 함께 나누면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된다고하니 추모모임에는 되도록 가야겠다.
우리도 또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생각하니 아직도 해야할게 많은 것 같고 정리할 것도 있다며 쓸데없는 잔걱정으로 잠 못 이루며 뒤척이다 집안을 서성이는 나에게 남편이 한마디 한다. 무얼 그리 걱정하냐? 어차피 떠나면 니 없어도 남은 이들이 다 알아서할테니까, 지금 당장은 옆에 있는 자기부터 챙기라며 펄펄 끓는 더위에 일하고 탈진했는데, 이열치열이라고 뜨거운 삼계탕만 계속 주지말고, 집에서 만든 시원한 냉콩국수를 해달라고한다.
난 차가운 음식은 별로지만 죽은 놈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그것보다는 함께 오래 살아야 할 사람이 우선 이니까 몸에 좋은 서리태 콩을 한봉지 담가놓았다.
통계적으로 노인들은 자기가 살던 곳에서 생을 마무리하기를 바란다고한다. 그러다 짝이 먼저 떠나면 홀로 지내다가 더 늙으면 형편에 맞는 노인병원에서 마무리한다. 나 또한 그러기위해서 약도 먹고 부지런히 운동해서 힘이 있을때 여기저기 다니다가, 그냥 저냥 조금씩 아프다가 더 많이 아프면 황창연 신부님 말처럼 마약 주사 맞으며 내집에서 지내다, 그러다가 비슷하게 가게 해주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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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희 전 한국학교 교사,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