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주 전에 둘째 아이가 친구가 만들었다며 찹쌀떡처럼 생긴 디저트를 들고 왔다.
“한국에서 지금 열풍인 ‘두쫀쿠’예요!”
“두쫀쿠?”
“두껍고 쫀득한 쿠키!” 아이가 4등분을 해 내게 한 조각을 내밀었다. 찹쌀떡처럼 겉은 쫀득한데, 안에 든 것은 바삭한 과자와 초콜릿이 범벅된 맛이었다. 너무나 달아서 날카로운 얼음조각이 몸속으로 밀고 들어갈 때처럼 몸서리가 쳐졌다. 단맛이 뇌의 중심부를 직접 강타하는 듯한 자극이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 함께 지내고 있는 조카가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다며 두쫀쿠 몇 개를 들고 왔다. 요리를 좋아하고 요리를 할 때면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만드는 조카가 직접 만들었다니 사양하지 못하고 조그만 조각을 한입에 넣었다. 처음 먹었던 것과는 달리 그리 달지 않고 바삭한 식감에 적당히 어울려 더 먹고 싶은 맛이었다.
“어떻게 만들어서 이렇게 맛있게 했어? 지난번 것과는 아주 다른데…”
조카는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이며 “좀 건강식으로 해보려 했어요. 근데 만드는데 일이 엄청 많더라구요.” 했다.
베이킹을 좋아하는 둘째는 남은 두쫀쿠를 다 먹고는 자신도 만들어 보겠다며 일을 벌였다. 조카에게 요리법을 받아 재료를 사러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가 생애 처음으로 중동 식재료의 낯선 냄새와 낯선 문구가 가득한 할랄 마켓에 발을 들였다. 이 쿠키를 위한 여정은 우리 가족의 새로운 문화적 지평을 여는 작은 사건이었다. 이제까지 중동 음식은 음식점에서 사다 먹기만 했지 한 번도 직접 요리를 해볼 엄두를 내보지 않았다. 피스타치오 크림과 아주 가느다란 국수를 잘라놓은 듯한 카타이피(Kataifi)를 사 들고 왔다.
20대 아이들이 초등생이 된 듯 부엌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며 저 두쫀쿠 열풍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나 싶어 챗봇에게 물었다.
“‘두쫀쿠’라는 용어는 한국 특유의 ‘맥시멀리즘(Maximalism) 디저트 문화'에서 탄생한 신조어지만 이 스타일의 원조는 뉴욕의 전설적인 빵집 ‘레뱅 베이커리(Levain Bakery)'입니다. 1995년 철인 3종 경기를 즐기던 파멜라 위크스(Pamela Weekes)와 코니 맥도널드(Connie McDonald)가 격렬한 운동 후 에너지를 즉각 보충할 수 있는 묵직하고 영양가 높은 간식을 고민하다가, 6온스(약 170g)에 달하는 거대한 쿠키를 구워냈습니다. 겉은 울퉁불퉁하고 바삭하지만, 속은 마치 반죽이 다 익지 않은 것처럼 촉촉하고 꾸덕꾸덕한 식감이 특징으로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가 열광하는 ‘뉴욕 스타일 쿠키'의 시초입니다.”
한국에선 마카롱을 두껍게 만든 ‘뚱카롱’이 유행한 후 입안 가득 차는 풍성한 식감에 열광하는 맥시멀리즘 디저트 문화가 형성됐고 두쫀쿠로 발전했다 한다. 아이 주먹만한 쿠키 안에 치즈, 말차, 레드벨벳, 로터스 등등의 재료를 넣어 다양한 맛을 골라 먹을 수 있고, 전통적인 맛(쑥, 흑임자, 인절미)을 입힌 두쫀구는 어르신 입맛을 가진 젊은 세대(‘할매니얼’)를 사로잡았단다.
아이가 만든 두쫀쿠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잠시 음미했다. 작은 쿠키 조각 안에 중동의 카타이피와 미국의 버터, 한국의 쫀득함이 뒤섞인 맛. 얼마나 아름다운 조합인가. 맛에 매료돼 또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철인 3종 경기는 못 해도 달리기 운동이라도 해야하지 싶다. 이 버터로 범벅을 한 페이스트리쿠키 열량을 어찌 다 소모할 것인가.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한국에서 중동 식재료를 활용해 만든 쿠키 열풍으로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내 가족이 중동 식재료 마켓에 처음으로 가는 이 현상을 무어라 불러야 하나. 세계가 한 지붕? 나비 효과? 이민자를 무작위로 잡아 추방하고 선한 자국민이 희생되는 것을 감내하고라도 이민자를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국수주의와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백인우월주의자들에게 두쫀쿠를 내밀면 어떨까? 문화적 뿌리가 뒤섞인 이 맛이, 그들이 굳게 닫은 마음에 작은 틈이라도 만들어 그 틈으로 빛이 새어들 수 있을까. 이러한 경계를 넘어선 융합의 맛이 요즘 같은 미국 사회에 어둠 속 등불이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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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워싱턴 문인회 맥클린,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