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학의 정치와 산수의 정의

2026-02-03 (화) 08:13:18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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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능한 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결정하고, 선택하게 하는 제도이다. 그 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가도록 결정하는 기준은 정의이어야 한다. 그러기에 정치는 정의를 따라야 하고, 정의는 정치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정치와 정의가 하나가 되어 한 방향과 목적으로 갈 때 그곳은 평화가 있게 되고, 서로 어긋날 때 갈등과 대립, 분쟁과 전쟁이 발생하게 된다.

정치의 목적은 완전한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만족하도록 해야 하기에 때로 정치가 정의와 배치될 때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쟁이다. 전쟁은 많은 사람의 피를 흘려야만 한다. 하지만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전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결국 한 국가의 존재를 위해서 많은 사람의 피를 흘려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 역사 가운데 전쟁이 정치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정의의 차원에서는 논란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그러기에 정치가 정의를 따라가야 하지만 그 선택과 결정이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 정의로울 수 있고, 불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치의 결정에 대하여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고, 또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정의롭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는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같은 것이기에 정치를 수학 정치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푸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지, 그 답이 이로운 것이냐, 좋은 것이냐 물어볼 필요가 없다.

풀어서 답이 나오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당하는 주택, 물가, 의료, 교육, 환경, 이념, 국방 같은 여러 방면에서 문제를 풀어야 하고, 선택해서 결정해야 한다. 정치는 이런 수학 문제 같은 문제를 항상 풀어야 한다. 그 문제의 답이 최선이고, 최고의 답이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풀어야 한다. 그 답은 할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원하는 답이 되도록 풀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정치가 계속 나타나는 문제를 풀려고 애쓰고 있다면, 그 정치는 잘하고 있는 정치라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정의는 정치와는 다르다. 정의는 하는 것만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정의이다. 정의는 문제를 푸는 정도가 아닌 정확하고, 분명해야 한다. 그 정의는 법이고, 도이고, 질서이고, 규범이다. 정의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다 따라야 하고, 긍정해야 하고, 굴복해야 하는 것이 정의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는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사회와 국가에 대하여 의무를 져야 하며, 또한 수고한 대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정의’라고 했다. 정의는 평등, 책임, 분배의 영역에서 어느 한 사람도 예외가 없는 것이 정의이다. 이 정의는 다수에 의해 결정되거나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기에 정의는 분명하고 확실한 산수 계산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람을 죽인 살인자를 정치에서는 형을 면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의에서는 형을 피하게 할 수가 없다. 살인한 자는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정의이다. 정치로 어떤 상황을 회피하거나 위장할 수 있지만, 정의는 드러나야 하고, 알려져야 하기에 정의는 손가락으로 수를 세듯 분명해야 한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립보서2:13-14)”

수학 정치와 산수 정의가 같이 갈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대로 어려운 수학 정치를 간단한 산수 정의를 찾는 정의로운 정치가 된다면 지금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만족과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김범수 목사,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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