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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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가 익을 무렵

2024-06-23 (일) 남현실 시인, 락빌/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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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보리가 막 영글 무렵
아버지는 강둑에 앉아
누렇게 뜬 얼굴로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당신 앞날을 투망질하고
계셨다
저녁 바람은 아버지 이마 위에 앉아서
검은 머리칼을 세고 나는 아버지가
소쩍새 되어 날아 갈 것 같아 애꿎은 풀만
잡아 뜯었다

두메에서 태어나 하늘만 보고 올라온 경성에서
한 살림 크게 이루어
하이힐 신은 신여성을 아내로 맞아
석조 집을 짖고
말을 타시고 장안을 누비셨다는 아버지

이제는 돌아오라 손짓했는지 고향 강
언덕에 하얀 집 지어 처자식 부려놓고
가진 것 다 바쳐 야당 뒷바라지 하시다
젊음이 막 비껴가는 그해
저녁놀 붉게 물들 구름 저 너머로
떠나시고 영영 돌아오지 않으셨다

나는 지금도 보리가 영그는 유월이 되면
마음이 허청거린다 그해 마지막 본
아버지의 등이 오래도록 서러워서일까

<남현실 시인, 락빌/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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