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집은 바쁘다. 나이 60이 넘으면 대체로 주변을 정비, 정리(Downsizing)하는 게 당연하다. 집도 마찬가지로 하우스>타운홈>콘도로 줄여가는 추세인데 우리는 거꾸로 6년전에 단독주택으로 들어갔다. 땅 넓은 미국에서 ‘텃밭생활’ 한 번도 못해보고 인생을 마감하기에는 억울(?)하다는 와이프의 선택을 막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1평짜리 두 칸으로 시작한 채소밭이 점차 늘려가다 보니 10단지로 늘어나서 우리가 익히 아는 채소는 이것저것 망라해서 심는다. 원래 조경(landscape)이 전공이던 아내는 꽃과 나무와 매우 친화적이다. 아침에 같은 시간에 일을 하지만 나는 채소밭, 아내는 꽃밭이다. 마구 잘라버린다. 특히 꽃나무 순치기를 할 때는 죽지 않을 만큼 무자비하게 잘라내 버린다.
내내 키우던 꽃을 그대로 두면 내년에는 더 많은 볼거리가 있을 것 같은데도 여지가 없다. 3년쯤 지나고 보니 그게 다 이유가 있었다. 자라는 그대로 두면 꽃도 작아지고 시들하고 볼품이 없어져 버린다. 잘라주고 다듬어 주니 훨씬 건강하고 실하다. 생활진보요, 생활개혁인 셈이다. 정치개혁과 연동해 볼 지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에 무관심한 자는 결국 가장 무능하고 저질인 인간에게 지배당한다'고 말했다. “모든 국가들은 그 나라 ‘국민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 정치문화의 오랜 두가지 격언이다.
한국 현대정치사의 큰 흐름은 4.19, 5.18등 의미있는 민주주의 혁명을 거치면서 정착한 ‘87체제’다. 이는 한국정치사의 큰 분수령이 된다. 87년을 기점으로 큰 두개의 정치집단이 서로 번갈아 집권을 하면서 경쟁과 성장을 거듭해 오고 있는 것이다. 두 정치집단은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놀라운 정치적 성숙기를 맞고 있는 정치집단이 있는 반면에 87년 이전의 군사독재시절의 모습에서 한 발자국도 변하지 않는 또 다른 정치집단이 상존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본 두 집단의 가장 큰 차이는 리더쉽의 차이다. 정치의 최종목표와 목적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리더쉽이 다르기 때문에 그 의사결정 과정과정들의 차이가 확연하다. 국민들은 양편이 갈라져 확증편향의 심화로 선거때는 진영논리 때문에 구분이 더 헷갈린다.
그 차이 중에서도 일반 국민들의 도덕과 윤리, 교양수준에 불과한 선공후사(先公後私)를 대하는 양측의 심리적 차이가 가장 크다. 알기 쉽게 말한다면 리더 ‘개인의 영달’과 ‘공동체의 이익’중에서 어느 것을 더 우선시하느냐의 차이이다. 국힘당은 사적 이해(私的利害)집단으로 규정해 놓고 보면 모든 게 정확하게 이해되지만 국가적 장래나 미래비젼, 헌신, 봉사의 높은 도덕성을 적용하려 전하면 일반 국민들의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결정과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떴다 방’ 정당문화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공개 통화에서 국힘당을 향해 ‘쥐약먹은 놈들, 뽀개 없애 버려야 할 당, 3개월짜리 당대표 운운했지만(2023.9.6 MBC보도) 현재 그들과 함께 한 몸으로 단결하자고 하고 있다. 자신이 구속기소한 박근혜 국정농단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한명인 정호성 비서관을 발탁한 것 등은 민주당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의(義)’의 개념이 추호도 없다. 나의 이익이 국가에 우선하는 철저한 이해관계만 있을 뿐이다.
노무현, 노회찬, 박원순의 죽음에 공통점은 단 한 가닥의 허물도 민주진영에 누가 되지 않아야 된다는 도덕적 강박증의 산물임을 대부분 알지만 다른 편에서 보면 이는 이해(理解)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이다. 이해(利害)의 관점에서 보니 ‘바보’로 보이는 것이다.
개딸(개혁의 딸)과 태극기의 차이가 양당의 차이다. 가끔씩 개딸들의 관심과 주장이 심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 핵심은 끊임없는 내부개혁과 자정(自靜)에 있다. 당원의 권리를 확대하고 일반국민들의 여론을 상시로 체크해서 반영토록하고 있다. 심지어 국회의장, 원내대표의 선택권까지도 요구하고 있고, 실제로 반영되고 있는 게 오늘의 민주당의 모습이다.
국회의원 공천과정에서부터 후보자를 필터링 한다. 민심>당심>당원>의원>당대표의 구도가 보다 확연해지고 있다. 국힘당 의원 108명에게 이런 민주당의 필터링을 적용한다면 통과될 의원은 고작 10%도 안 될 것이다.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따른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맞다. 북한 노동당 구호다. 내부적 개혁이 전무하다는 게 거의 같다.
관심조차 없을 지 모르지만 ‘민주주의가 어떻게 무너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 다니엘 지브렛( steven Levitsky, Daniel Ziblatt) 공저)에서 ‘민주주의 붕괴이면에는 경쟁세력과 비판세력에게만 적용되는 비리수사, 시대착오적 판결로 다수의 뜻을 꺾는 대법원, 이처럼 낡은 제도로 소수의 독재가 허용되고 은밀히 극단주의자들을 지원해서 소수의 지지만으로 국가권력을 차지하게 된다는 걸 남미의 후진국가를 모델로 트럼프 정부도 자행했음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 조목조목들이 지금 한국에서 날마다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다행이라면 윤석열 정부 때문에 이런 정당 정체성의 극명한 차이를 일반국민들이 너무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다. 국민들의 수준이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이듯이 그 정당의 수준은 그 지지자들이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윤석열대통령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비교가 되어야 경쟁을 하든가 말든가 할 것이다. 어쩌면 40년 차이도 넘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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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메릴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