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형 삶을 살 것인가, 독립적 인간으로 살 것인가?
모두들 후자의 삶을 살려곤 하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의존형, 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인간이기에 우리들 보통 일반인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소위 지식인, 지도자들은 어딘가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한다.
흔히들 일제 강점기에 소위 지도자, 지식인들이 변절하여 자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자손손 불명예의 멍에를 둘러메고 살아가는 꼴을 보게 된다. 일시적 편함과 같잖은 명예랍시라는 작위(爵位) 등이 하등 소용이 없음을, 똑똑하다고 자칭 호언하는 사람들이 왜 그리 현명치 못했을까! 어느 변절자는 이렇게 실토했다. 일제통치가 오래도록 계속 되리라 믿었다고. 일제가 하루아침에 원폭투하로 비참한 종말은 상상도 못했으리라.
이런 현상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난무함을 본다.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자신의 자리를 비워 놓고 엉뚱한 자리에 가 있은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힘든 여건에서도 불철주야, 주경야독하여 소위 대성하였다면 마땅히 어렵고 힘없는 약자들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고 그들의 권익을 위해 자신의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올챙이적 생각을 망각, 아니 고의적으로 회피하고 개인의 영달 추구에만 오로지 눈물나게 매진하는 현상들이 어느 곳에서나 감지됨에 냉소를 금할 길 없다 하겠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미국의 모 유명한 세계적 연예인(가수)은 자신이 힘들게 자랐던 고향을, 그 지긋지긋했던 악몽들이 되살아나는 것이 두려워 일부러 찾지 않았다는 심정을 고백했는데 백번 이해하고도 남는다.
개인은 그렇더라도 한 나라의 국사(國事)를 이끄는 소위 국가 동량의 위치에 있을 땐 확연히 다른 모습이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과부가 홀아비, 홀아비가 과부의 심정을 어떻게 세세한 부분까지 알겠느냐만은 그래도 힘들다는 사실만은 알 것이 아닌가. 하여 소위 지도자들은, 특히 역경에서 성공한 분들은 부디 태생을 잊지 말고 약자들을 위해 계속 고군분투하시길 부탁한다.
남에게, 더 큰 권력자나, 가진 자에게 빌붙어 언제 짤릴 지도 모를 의존형 인간이기를 진정 원하려는가? 아니면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애국지사들의 삶을 따를 것인가는 지도자 되기를 염원하는 분들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요즘이 소위 굴욕적 한일 회담을 반대하던 학생들과 시민들이 궐기한 1964년 6월 3일 60주년 기념일이라 감개무량하다!(역사의 한 장면에 참가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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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길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