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 곁에서 멀어져 가는 것들…

2024-04-29 (월) 이규성 수필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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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가면서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변화하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맞이하는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기는 하지만 불가피한 것이어서 때로는 미묘한 감정의 복합체가 되곤 한다. 이러한 감정을 느낄 때는 과거의 추억에 잠겨 있는 것 보다 현재의 순간을 즐기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 고 그 추억을 소중히 여기며 삶을 계속해 나가아만 한다. 변화와 함께 성장하고 새로운 경험을 쌓으며 삶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멀어져 가는 것들은 더 이상 내 손끝에 닿지는 않겠지만, 모든 것이 항상 내 곁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법, 그래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남긴 추억과 경험은 소중한 마음의 자산이 되어 나를 응원해 주고 인내와 용기를 주는 것 같다. 그들이 내 곁에서 멀어져 갈 때 섭섭하고 아쉬웠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로 인해서 나를 성장시키고 새로운 것을 찾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인연들이 찾아올 것이며, 더 나은 미래와 가능성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멀어져 가는 것들을 뒤돌아보는 것 보다 앞으로 나아가며 새로운 길을 모험하고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기로 다짐하면서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을 다독인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일, 또 어렸을 때 외식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 시절의 소중했던 추억도 이젠 점점 내 곁에서 멀어져 가고 녀석들이 뛰놀던 빈방을 쳐다보면 마치 새들이 떠나간 빈 둥지를 보는 것 같은 허전함과 아련한 추억 속에서 한동안 헤매기 마련이다.

가족과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멀어지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 빈자리는 이제 예쁜 손녀, 손자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이들과 함께 새로운 추억거리를 만들어 가는 중 이다.

시간이 변하고 삶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가족 간의 정이 더 깊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각자의 일정과 삶을 채워가면서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해도 마음으로는 언제나 서로의 곁에서 의지해 가면서 각자의 삶에 충실하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어릴 적 친구들과의 추억도 이젠 내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같이 자라고 놀면서 또 숙제도 해가면서 많은 추억을 만들었고, 그중 일부는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소중하고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던 그 추억의 순간들을 회상하면서 자꾸만 멀어져 가려는 그때 그 친구들의 모습을 붙잡아 놓고 싶어서 이름만 부르면 어디선가 곧 뛰어나올 것 같은 착각마저 하게 된다.

매년 3월이 되면 군(軍)에 입대하던 날이 생각난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입대를 위해 떠나던 서울역 2등 대합실에서 부모님과 친척 아주머니의 전송을 받으며 떠나던 날 무표정한 얼굴로 “잘 다녀오너라” 한 마디로 당신의 사랑을 표하셨던 아버지, 그 곁에서 말없이 나를 쳐다보시며 눈물만 훔치시던 어머니 그리고 “너는 여자 친구도 없냐?”고 물으시면서도 그렇게 섭섭해 하시며 등을 두드려 주시던 아주머니도 이젠 다시 뵐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나신 지가 벌써 수십 년이 지나고 보니 이제는 그분들의 모습마저도 내 기억 속에서 아른거리기만 한다.

군(軍)에서 전우애(戰友愛)로 맺은 동기생들과의 인연은 50여 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끈끈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청년 장교 시절, 세상이 온통 내 것이나 되는 것처럼 헤집고 다니면서도 두려움이 없었던 그 야망의 시절도, 그 시절의 추억도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한 둘 씩 내 곁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동기생들과 함께 연병장에서, ‘만두 고지' 전투훈련장에서 그리고 땀 냄새가 진동하던 내무 반에서도 우리는 나라를 지키는 일선에 서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했던 그 시절, 군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 한 동안 결혼 한다고 청첩장을 보내 주었던 동기생들 모습을 잊지 않으려고 생각 날 때 마다 앨범을 뒤적이기도 한다.

내 결혼식에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온 동네 가 떠들석하게 함 잽이 노릇을 하면서 축하해 주었던 그 친구의 부고(訃告)를 들었을 때 녀석의 사진을 드려다 보면서 함께 했던 추억의 시간을 되새겨 보며 웃음기 없는 얼굴로 앨범에 남아있는 녀석에게 조용히 작별 인사를 하기도 했다.

우리네 삶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연속이며 변화와 회복의 과정이다. 내 곁에서 멀어져 가는 과거의 추억들은 우리가 살아온 증거이자 흔적이며 우리를 미래로 이끄는 길잡이가 되어 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사로 잡히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긍정적인 안목으로 내다보며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서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찾아가는 지혜야말로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이규성 수필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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