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월의 산채 파노라마

2024-04-29 (월) 정성모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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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에서 터지는 4월의 봄향기!”
누구나 한 번쯤 들었을 미국시인 T.S. Eliot(1888-1965)는 그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이라고 했다. 마른 땅에서 싹이 움트고 다시 살아나야하는 4월은 잔인하다고 했다.
그러나 나에게 4월은 하루하루가 입안에서 터지는 봄의 향기 때문에 바쁘고, 이것저것 채취하여 먹기 즐겁고 신나는 달이다. 자르고 꺾고 뽑다보면 4월은 쏜살처럼 훌쩍 지나간다.

4월은 쑥쑥이 텃밭 농사꾼의 귀빠진 달이여서 더욱 좋은 달이다.
4월이 되자마자 맨 먼저 신이 주신 선물 두릅을 채취, 데쳐서 초간장에 찍어 먹는다. 튀겨 먹으면 환상의 맛이고 환장(?)의 맛이다.

배달민족의 건국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그 이용의 역사가 오래된 쑥을 캐서 쑥인절미떡과 쑥개떡을 빚어 먹으면서 봄의 향기를 물씬 느끼고 할머니 생각도 한다.
텃밭과 산에는 산마늘(명이)이 겨울을 뚫고 올라와서 인사를 한다. 산마늘을 채취하여 삼겹살과 쌈싸서 먹고, 김치와 장아찌를 담궈서 냉장고 깊숙이 넣어 두고 일년 반찬으로 먹 는다.


텃밭에서는 하늘이 내린 약초 신선초를 자르고, 산에서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여성의 묘약 당귀를 꺾어서 봄나물로 무쳐 먹는다.
동네 개울가에서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 건강하게 해주는 미나리를 낫으로 베어와서 나물로 무쳐 먹고, 김치도 담그고, 미나리 오징어 무침도 하고, 미나리 바지락 전도 지져 먹는다.

나열하다보니 머위나물, 시금치나물, 미역취나물, 원추리나물, 부추김치 등은 끼지도 못하고 등외로 밀려났다.

마른 땅에서 싹을 움트고 올라 온 야채 산채를 채취하며 즐기는 4월은 엘리어트가 말한 잔인한 달이 아니고, 분명 쑥쑥이 텃밭 농사꾼에게는 바쁘고 신나는 달이다.

신나고 행복한 4월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지만 4월은 내년에 또 찾아 온다. 냉장고 깊숙이 넣어 둔 산마늘 김치와 장아찌를 꺼내 먹으면서 기다리면 된다. 봄나물이 먹고 싶으면 연중무휴 냉동 보관 중인 산채 야채를 해동시켜 무쳐 먹으면 된다.

야채 산채의 4월이 가면, 텃밭의 매실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매실의 5월이 온다. 매실청, 매실장아찌, 매실주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다급해진다.
이래서 바쁘고 저래서 바쁘고 바쁜 좋은 동네 우리 동네!

<정성모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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