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저무는 여섯 시의 부고(訃告)

2024-04-22 (월) 김인식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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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 혓바닥을 비틀듯 히터의 온도를 높인다
저녁 해를 진동롤러처럼 누르며 둥근 매연이 지나간다
전자파를 명품가방에 넣고 먹구름이 지워버린 약속 장소를 확인한다
아무래도 이번 달엔 벤조페논을 더 장만해야겠어
초록 신호등이 켜지자 초등학생 아이가 폐유를 밟고 건너간다
방부재에 중독된 식당들이 치사량의 농약을 무한리필 중이다

쉿,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죽여주는 임포섹스좀비타임!

가리비 전복 소라의 암수 성분이 짜릿하게 뒤바뀐다
미세 먼지 1+1이 냄비에서 수제비처럼 끓는다
여기, 후쿠시마에서 배송된 등 푸른 해안선 1인분 추가요
아직 멸종의 꿈을 이루지 못한 꽃게가
해물탕집 냉장고 속에서 손목을 긋는 저녁
기형으로 피어나는 비린내에 둘러앉아 화목하게 손발이 뒤틀리는 사람들
쇼핑가방을 양 손에 든 민소매 원피스가 페트병처럼
자취방 쪽으로 빠드득 구겨진다


난연재 덧칠한 식당에서 플라스틱 컵에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정자감소를 한껏 즐긴 남자들이
(오늘은 내가 쏠게, 총알이 멸종된 하체에서 죽은 소의 껍질을 꺼낸다)
촤르르 비스페놀A로 코팅된 감광지영수증을 근사하게 받아들고
아스팔트 위로 제2의 폐기물처럼 나뒹구는 사람들

미세먼지에 급소를 물린 게릴라성 소나기가 의식을 잃고
배란이 삭제된 지렁이가 토양에게 사망선고를 내린다
모래조차 맹독성 전갈로 진화 중인 아파트놀이터에서
시한부의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공동묘지 비석처럼 줄지어 선 신축아파트들 사이로
저무는 여섯시, 94F 마스크를 한 초저녁달이
해골처럼 둥근 조등을 내건다

<김인식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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