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결혼 조건

2024-04-21 (일) 문일룡 변호사, VA 페어팩스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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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에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 선거를 마치고 고국을 방문하던 참에 대만을 다녀왔다. 그 때 그 곳에 사는 사돈들, 그러니까 내 며느리의 부모님들을 만났다.

그 사돈들은 미국에서 치러진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팬데믹 기간이라 여행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돈들을 대만에서 만날 때까지 정식으로 인사하지 못했다. 물론 작년 가을이 첫 만남은 아니었다. 큰애와 며느리가 대학교 동기여서 같은 해에 졸업했는데 졸업식에 참석하고자 대만에서 온 사돈들을 길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엔 단순히 학교 활동을 같이 하는 친구사이일 뿐이어서 나와 사돈들과의 만남은 정말 잠깐에 불과했다. 그게 2010년 봄이었으니 작년 가을의 정식 만남은 13년 반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내 며느리의 부모님들은 대만인들이다. 미국에 유학와 학위를 마친 후 직장 생활하다가 며느리를 낳았기에 내 며느리는 미국시민이다. 그런데 며느리가 어렸을 때 부모들이 대만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해 며느리도 대만으로 같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대학교는 미국에 와서 다니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 큰애를 만나 사귀게 되었다. 그 후 둘은 헤어졌다 다시 사귀고, 또한 미국 동부와 서부로 떨어져 몇 년의 장거리 연애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나는 한 번도 큰애에게 꼭 한국인과 결혼해야 한다고 요구한 적은 없다. 단지 크리스찬이고 사랑하는 사람이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대만인 며느리를 사귀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거리낌 없이 축하해 주었다. 큰애가 며느리를 나에게 정식으로 소개시키는 장소에서도 나는 특별하게 주문한 것은 없었다. 그냥 우리 애를 좋아해 주는 것에 감사했고 우리 애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느냐 정도를 물었을 뿐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큰애로부터 대만에 사는 여자친구의 부모님들에게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전화를 드려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후 또 다시 들은 바로는 여자친구 부모님들이 큰애가 직접 대만으로 와서 인사를 하라는 분부를 내렸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일로 바쁘기도 한데 그 먼 곳까지 다녀와야 한다는 게 부담이 되었지만 다녀올 수밖에 없었다.

큰애가 대만에 다녀온 후 어땠는지를 물어보았더니 특이한 것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사실 여자친구 부모님들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를 내가 작년 가을에 대만에서 사돈들로부터 듣게 되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딸이 남자 친구를 대만까지 데리고 와서 인사를 드리게 했을 때는 이미 딸은 결혼에 대해 마음을 굳힌 것이다. 부모들이 뭐라고 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난 것이다.” 여기까지 듣는 순간 나는 내 큰애에게 무언가 흡족하지 않은 점들이 있었구나 하는 것은 직감할 수 있었다. 아마 딸이 배우자로 같은 대만인을 택하지 않은 것도 포함될 수 있겠다 생각되었다.

그런데 당시 사돈들이 큰애에게 결혼 조건으로 제시한 게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듣는 순간 사돈들이 참 현명한 분들이구나 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조건들이 특이하기도 했지만 그 어느 하나도 달성 가능치 않은 것은 없었다. 큰애에게도 도움이 되면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조건들이었다.

첫째는 체중 감량이었다. 아! 그것은 평소에 나도 말하고 싶었던 것인데 사돈이 대신 해주신 것이다. 내 마음을 읽으셨구나. 둘째는 좀 더 공부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당시 큰애는 학사학위 밖에 없었으나 여자 친구는 박사학위를 마친 상태였다. 마지막 조건은 중국어를 좀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내가 절대 찬성하는 부분이었다. 나도 대학 시절 중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한 학년을 휴학하고 대만으로 갔었다. 그리고 중국어의 위상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고 내가 며느리에게 한국어를 조금이라도 공부해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은만큼 내 사돈들도 우리 큰애에게 중국어를 공부해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수 있다.

사돈들이 전해준 세 가지 결혼 조건 얘기를 들으며 무리하지 않고 달성 가능한 조건들을 제시한 사돈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문일룡 변호사, VA 페어팩스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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