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거짓의 유토피아를 넘어

2024-04-15 (월) 김유숙 미주통일연대 워싱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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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롭고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약 9만여명의 재일 조선인들이 북송선 만경봉호에 몸을싣고 북한의 청진항을 향했다. 그 당시 청진은 한마디로 지옥의 입구가 되어있었다. 그들은 분명히 아메리칸드림과 같은 북한몽을 꿈꾸었으리라 생각한다.

자신들이 지상낙원이라고 생각했던 북한에 막상 도착해보니 너무나도 차별적이고 가혹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낙원과 지독하게 다른 모습에 경악했으며 잘못된 곳에 도착했다는 걸 직감했을 것이며 북한의 거짓과 기만에 속았다고 깨닫게 되었다. 깨닫는 순간 이미 현실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북한이라는 거대한 감옥속에 갇혀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자유와 인권을 박탈당한채 가난과 불행으로 60여년 넘게 살아가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것이다.

거짓의 유토피아에서 잃어버린 억울한 세월을 배상이라도 받으면 조금이라고 고통이 치유될까…급기야 그들은 도쿄지방재판소에 북한의 김정은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하게 이른다.


지난해 드디어 도쿄고등재판소 재판장은 북한 정부가 지상낙원 선전과 달리 귀국자들에게 비참하고 가혹한 조건에서 살도록 강요해 거주지 선택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했다며 원고들은 사실상 삶을 강탈당한 것이라는 판결문을 내리기도 했다. 이 사건을 두고 국제인권단체들은 일제히 역사적 판결이라고 반기며 북한 정부에 북송 사업의 책임을 실질적으로 추궁할 초유의 기회라고 평가하기도했다.

이런 거짓된 지상낙원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사람들이 산증인이 되어 우리앞에 진실을 밝히고 있다.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탈북스토리를 영화화한 비욘드 유토피아(Beyond Utopia)가 그것이다. 탈북과정에서 겪는 고난과 위험을 생생하게 담아냄으로써 북한의 인권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으로 지상낙원이라고 믿었던 땅을 떠나 자유를 향한 위험한 여정을 그린 다큐멘터리이다.

이는 거짓의 유토피아인 북한이라는 땅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현실과 갈등을 보여주며, 특히 이들의 여정을 돕는 김성은 목사의 용기와 헌신을 감동적으로 영상에 담아내고 있다. 공동제작자로 참여한 자랑스런 한인 2세인 수미 테리 박사님의 집념과 공헌으로 더욱더 유명세를 탄 작품이기도 했다.

며칠전 TV를 보다가 남한의 초등학생 정도의 작은 키를 한 북한 군인들이 자신의 키만한 소총을 메고 있는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북한 주민들의 체격이 갈수록 왜소해지고 있으며 거듭된 식량난으로 인한 성장기 발육 부진이 그 원인이라 추측된다.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 와보니 자신들과 남한사람은 마치 다른 인종처럼 체격 차이가 컸다고들 말한다. 이대로 가다간 민족의 DNA가 바꿔질 지경까지 오는건 아닌가 걱정된다. 통일의 시간이 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통일을 말할 때 일반적으로 통일은 남과 북 그리고 민족의 하나됨을 말한다. 이제는 통일이 북한동포들을 하루속히 가난과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구출해 내야하는 휴머니즘의 영역으로 확대되었으며 우리모두가 관심을 갖고 실천해야하는 도덕적 의무가 되었다.

유토피아라는 거짓선전에 속아 북송선을 선택했던 그들의 고통과 억울함을 지금이라도 위로하고싶다. 그리고 거짓의 유토피아에서 탈출하기 위해 지금도 어디선가 목숨건 여정을 선택하는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싶다.

<김유숙 미주통일연대 워싱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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