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에 따르면 제헌헌법 때부터 존재했던 영토조항(제3조)에 의해 헌법의 규범적 효력이 북한의 전 지역에도 미치게 되어 있다. 우리 헌법의 입장은 과거 서독 기본법 제23조에서 동독 지역에는 서독기본법의 효력이 원칙적으로 미치지 않는다고 규정한 것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헌법상 영토조항은 적어도 북한지역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체제가 등장할 때까지는 북한주민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호하겠다는 국가의 보호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우리 헌법은 제4조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통일의 가치적 지향점과 ‘평화’라는 방법적 한계를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 조항을 종합적으로 해석하여 대법원은 남북관계는 국가의 관계가 아니며, 북한의 법적 지위는 ‘반국가단체’와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라는 이중적 지위에 있다고 판단해 왔으며, 이러한 남북한 특수관계론은 이미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서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면서 대남정책의 근본적 변화의도를 드러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 변화는 과거 분단 시기 동독이 취한 입장과 유사하다.
동독은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이후 이를 항구적인 분단조약으로 해석하고 1974년 헌법 개정을 통해 통일 조항을 삭제하였으며, 독일인이 ‘사회주의 민족’과 ‘자본주의 민족’으로 분리되었다고 선언하는 등 서독과 구별된 독자적인 국가로서의 지위를 주장했다. 이에 반하여 서독은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이후에도 동독을 국제법상 국가로 승인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하였다.
이러한 입장에 따라 서독은 상호 ‘대사관’을 설치하자는 동독 측의 주장을 거부하고 별도의 ‘상주대표부’를 설치하는 특별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또한 1973년 서독연방헌법재판소는 비록 동서독기본조약 제6조에서 내정불간섭을 규정하고 있더라도 서독기본법에 따라 동독주민에 대한 서독정부의 헌법상 보호의무는 지속된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서독의 확고한 태도가 독일 통일을 앞당기는데 기여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한편 국내 일각에서도 남북관계를 ‘국가관계’로 취급하여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 시점에서 이른바 ‘두 국가론’이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는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먼저 ‘두 국가론’은 북한이탈주민의 보호에 법리적 지장을 초래하고 북한 이슈에 있어서 우리의 관여를 위한 중요한 헌법적 근거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또한 남북한이 국가관계가 아니라 언제가 통일할 상대방이라는 특수관계론이 그동안 남북주민의 상호 포용성을 높여주고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에 기여하는 긍정적 기능을 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2013년 북한에서는 헌법보다 상위의 최고규범으로서의 위상을 가지는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개정을 통해 왕조적 세습체제를 공식화하여, 남북 상호간의 가치체계의 배치성이 더 높아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우리도 특수관계론을 포기한다면 자칫 북한의 이중적 지위 중 ‘평화 통일을 위한 동반자 관계’는 사라지고 북한 주장처럼 ‘적대적 두 국가관계’만 남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최근 북한의 대남 정책 변화는 북한 주민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국가 관계 전환 논의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국가관계로 전환하는 것은 북한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체제로 변한 경우에 논의하면 되며, 또한 일각에서 지적하는 각종 남북합의서의 법적 효력 이슈는 남북관계의 국가관계 전환과는 법리적으로 무관하며 남한 내에서 여야 합의로 이행법률형식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통일을 비롯한 남북관계 이슈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 존중, 자유와 인권 증진이라는 인류 보편의 문명사 발전이란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며, 그럴 때 세계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헌법 제4조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이라고 규정하여 ‘인류보편적 가치질서’의 측면에서 통일을 추구해야 한다고 명시한 우리 헌법의 정신이기도 하다.
지금 필요한 자세는 북한의 정책변화의 의도와 여파를 주시하면서도 이를 확대하여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최근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 북한 당국의 통제 강화 정책을 통해 드러나는 북한 장마당세대의 인식 변화에 주목하면서 우리의 통일과 대북 정책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일이다.
이제 당위론을 넘어 예측과 대비의 측면에서 남북한이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반도 가치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미래 세대에 심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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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호 한동대 법학부 교수 한동통일평화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