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부활주일은 3월의 끝 날이었다. 가톨릭에서는 부활주일 전 주일을 성지 주일이라 부르며 이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군중들의 환영을 받은 일에 대한 교회의 기념일이다. Palm Sunday 라고도 칭한다.
그 주간부터 성 주간이라 부르며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성삼일이라 따로 부르고 있다. 일반 개신교회에서는 매주 수요일 새벽 기도가 있는 것처럼 가톨릭은 성삼일 주간에 철야 기도서부터 전례에 관한 많은 기도를 드리고 있다.
누구나 시계 바늘을 따라가야 하는 일상의 생활에서 이런 기도의 생활을 보내고 나면 자연히 생체의 리듬은 피곤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을 끝내고 토요일 아침, 내일 부활주일 축제가 있다는 설렘에 잠을 깨우는 향기 좋은 커피 한잔에 에너지 충전을 시키는 달달한 쿠키 하나를 먹으려 할 즈음 남편이 갑자기 어떤 영상을 보여 주었다. 어느 남자분이 웃는 얼굴로 종을 힘차게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는 분의 모습이다.
지난해 단풍이 진하게 물들어가는 가을 우리 그룹에서 어느 형제님이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어두운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들은 저마다 침묵하고 기도드리기 시작했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고 그 누구에게나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그냥 지나간다. 어느 듯 봄날. 굵은 버들강아지가 다람쥐 꼬리털처럼 불룩불룩해 지더니 그 속에서 봄꽃의 대표격인 목련이 고개를 내밀고 땅위엔 초록 물결이 잔잔하다. 참으로 자연의 신비란 인간의 힘으로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신비다.
우리들은 기도하며 이렇게 봄을 느끼는 시간에 그 형제님은 다섯 달의 항암치료를 받으시고 힘차게 종을 치신 것이다. 무섭고 많이 떨리셨을 텐데 참고 잘 견디시어 종착역에 도착한 기분으로 종을 치셨다.
그 분은 그동안 수고해주신 의료진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고 우리 회원들한테 12번의 항암주사 맞기가 싫고 두렵고 힘들었지만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에 잘 이겨냈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셨다. 눈시울이 적셔졌다.
자상한 아버지로, 속 깊은 남편으로, 화학 생명공학자로 인재양성에 힘쓰시고, 또 지역사회에선 좋은 일도 많이 하셔서 상도 받으시고 그리고 성당에선 하느님의 종, 착실한 일꾼으로서 살아가시는 분이시다.
부활 주일 다음날 아침 비가 내린 촉촉한 산책길을 걸었다. 꽃잎이 떨어져 눈처럼 소복이 쌓인 길을 면사포 쓴 새 색시처럼 살포시 걸으며 살아온 만큼 살아온 인생의 연륜이 쌓인 할머니의 생각으로 걸었다. 무쇠를 녹인다는 기도의 힘, 함께 느끼는 환희와 기쁨, 그리고 성취감.
부활이 지나간 봄의 색깔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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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베데스다,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