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하고 아름답고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
2024-04-12 (금)
박흥진 편집위원
▶ ‘카사블랑카’(Casablanca·1943) ★★★★★ (5개 만점)
릭과 일사가 안개 낀 카사블랑카 공항에서 이별의 아픔을 나누고 있다.
술집 ‘릭스 카페 아메리캥’의 피아니스트 샘(둘리 윌슨)이 부르는 주제가 ‘애즈 타임 고즈 바이’처럼 감상적이요 로맨틱하고 또 아름답고 가슴 아픈 영화 ‘카사블랑카’는 명화가 갖춰야할 요소를 고루 지닌 작품이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러브 스토리와 다양한 인물, 이국적 장소와 다양한 조연 진과 유머 있고 냉소적인 대사와 멜로드라마적인 사건과 감상적인 상황 및 이상주의와 영웅적 행위와 사나이들 간의 우정과 의리 등. 그러나 이 영화는 그 무엇보다도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하는 센티멘탈리스트 터프 가이 릭(험프리 보가트)과 백합처럼 아름답고 청순한 일사(잉그릿 버그만)의 거역할 수 없는 화학작용 때문에 세상 모든 연인들의 영원한 사랑의 영화로 남아있다.
세상에 사랑이야 하도 많지만 릭과 일사의 사랑이 특히 가슴 깊이 사무치는 이유는 둘이 영화 마지막에 짙은 안개가 낀 카사블랑카 공항(영화는 LA인근 버뱅크에 있는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에서 찍었다)에서 헤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나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요원인 남편 빅터(폴 헨리드)만 혼자 리스본으로 보내고 자기는 릭의 곁에 남겠다고 호소하는 일사에게 릭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오늘 저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오늘이나 내일 당장은 후회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곧 영원히 후회하게 될 거야.” 릭을 바라보는 일사의 하얀 볼 위로 눈물이 구슬처럼 흘러내리고 일사의 얼굴을 응시하는 릭의 슬픔을 가둔 눈동자에 쓰디쓴 체념의 단호함이 어른거린다.
일사가 “그럼 우린 어떻게 하구요”라고 다시 조르자 릭은 “우리에겐 언제나 파리가 있지 않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릭은 일사의 턱을 손으로 들어 올리면서 “자, 당신을 이렇게 보니 마음이 좋네”라고 달랜다. 릭과 일사의 사랑이야말로 미완성의 아름다움인데 릭이 일사를 비행기에 태워 보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우리는 이 둘을 벌써 잊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워너 브라더스(WB)가 만든 이 영화의 릭과 일사 역으로 처음에는 로널드 레이건과 앤 쉐리단이 각기 고려됐었다. 그러나 보가트에게 릭이 주어지면서 WB는 그때까지 갱스터 역으로 유명했던 보가트의 첫 로맨틱한 주인공 역을 위해 ‘보기(보가트 애칭)를 로맨틱하게 팔아라’라는 구호를 내걸고 홍보작전에 총력을 기울였었다. 오스카 작품, 감독(마이클 커티즈) 및 각색상 등을 탄 이 영화의 원전은 희곡 ‘모두들 릭의 카페에 오네.’ 영화는 1943년 1월 하순 카사블랑카에서 열린 로즈벨트 미 대통령과 처칠 영국수상의 정상회담에 맞춰 개봉돼 호평과 함께 히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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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