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셰익스피어와 아녜스의 아들 ‘햄넷’
▶ 사랑·죽음·예술을 통한 치유라는 보편적 주제를
▶ 감독이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적 언어로 풀어내며
▶ 16세기 가족의 이야기를 현대 관객의 가슴에 새겨

영화 ‘햄넷’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상실과 슬픔 앞에 선 셰익스피어 가족의 가장 날것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사진 제공=포커스 픽쳐스]
클로이 자오 감독의 ‘햄넷’는 고정된 시선으로 포착한 사랑과 상실의 연대기다. 매기 오파렐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아들 햄넷의 비극적 죽음을 다룬다. 그렇다고 단순한 전기 영화는 아니다. 자오 감독은 사랑, 죽음, 그리고 예술을 통한 치유라는 보편적 주제를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 언어로 풀어내며 16세기 한 가족의 이야기를 현대 관객의 가슴에 새긴다. 전형적인 시대극의 화려함보다는 날것의 감각과 시적 리얼리즘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사랑과 상실의 아픔을 간직한 모든 이들에게 카타르시스의 은은한 빛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햄넷’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촬영 방식이다. 자오 감독과 촬영감독 우카시 잘은 그들이 ‘CCTV 샷’이라 부르는 감시 카메라 촬영기법을 전면적으로 활용한다.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의 가장 사적인 순간을 침묵 속에서 응시한다. 이 고정된 시선은 영화에 묘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카메라는 개입하지 않는 목격자처럼 가족의 삶을 지켜본다. 배우들은 프레임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는 관객을 능동적인 관찰자가 아닌, 우연히 이 가족의 삶을 엿보게 된 존재로 만든다. 간혹 카메라가 인물들과 함께 움직이는 순간, 그 움직임은 더욱 의미심장하고 감정적으로 충만해진다.
자오 감독은 우카시 잘 촬영감독의 전작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지평선을 쫓으며 모든 것을 담으려 했다면 ‘햄넷’에서는 하나의 프레임, 하나의 무대로 축소하고 싶었는 것이다. 한 프레임으로 인생 전체를 담을 수 있을까? 갈 곳이 없기에, 관객은 오직 인물의 내면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 이 시각적 제약은 역설적으로 영화에 깊이를 더한다. 넓은 풍경을 담을 수 없기에 카메라는 미세한 표정 변화, 손의 떨림, 시선의 방향에 집중한다. 우카시 잘의 촬영은 이 제한된 공간 안에서도 놀라운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관객은 점점 이 가족의 가장 은밀한 세계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제시 버클리가 연기한 아녜스는 이 영화의 심장이다. 셰익스피어의 아내이자 자연과 깊이 연결된 신비로운 존재인 그녀는 매 사냥꾼이자 치유사로서 야생적이면서도 지혜로운 여성으로 그려진다. 영화의 핵심 장면은 당연히 햄넷의 죽음이다. 야코비 주프가 연기한 어린 햄넷은 쌍둥이 자매 주디스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자오 감독은 이 촬영일을 특별히 의식적으로 준비했고, 그 죽음을 단순한 비극이 아닌 가족 전체를 변화시키는 변형의 순간으로 그려낸다. 이후의 슬픔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다. 아녜스는 자연에 몰입하고, 윌리엄은 그의 비통함을 ‘햄릿’이라는 불멸의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자오 감독은 이를 삶과 죽음, 육지와 바다 사이의 물리학적 은유로 설명한다. 위대한 문학은 그 경계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햄넷’에서 자연은 배경이 아닌 캐릭터다. 숲, 나무, 햇빛은 인물들의 내면 상태를 반영하는 거울이자 치유의 공간이다. 자오 감독의 철학은 명확하다. 인간은 빅뱅의 입자로 나무, 잎과 같은 물질로 이루어졌다. 그 하나됨을 기억한다면 두려움이 없다는 믿음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샘 멘데스가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스필버그는 “자오의 고유한 인간성, 정확한 서사 감각, 그리고 놀라운 연기를 이끌어내는 재능이 ‘햄넷’의 모든 프레임에 스며들어 있다”고 평했다. 멘데스 역시 “날것과 섬세함을 결합하는 방식은 전에 본 적이 없다”고 언급했다.
영화 ‘햄넷’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통제 불가능한 삶에 대한 불안,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이는 16세기나 21세기나 변함없는 인간의 조건이다. 그래서 더 보편적이고 더 깊이 공명한다. 눈물을 자아내지만, 그 눈물은 절망이 아닌 인간 경험의 아름다움에서 흘러나온다. 한 프레임 안에 인생 전체를 담아낸 클로이 자오의 시선은 죽음의 공포와 사랑의 갈망이라는 영원한 질문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고통을 연금술처럼 변형시키는 내면의 과정을 통해 자오 감독은 이렇게 속삭인다.
“사랑은 죽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꿀 뿐이다. 그리고 그 변형이야말로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탈바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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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