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2)

2024-04-08 (월) 이규성 수필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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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능력이 없어 제구실도 못 하면서도 건방져서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이때 ‘선’이란 순수한 우리말로 ‘익숙하지 못하거나 자격에 맞지 아니하여서 서투르고 부족한 것을 뜻하는 말’로, “미숙한 사람이 자신이 잘할 줄 안다고 하며 일을 하다가 오히려 그것을 망치는 것”을 설명하는 말이다.

십수 년 전에 우리 내외는 인디애나주 미샤와카(Mishawaka, Indiana)라는 곳에 살고 있다가 버지니아로 이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이삿짐을 전문으로 취급한다는 회사로 요금을 알아보았더니 예상했던 금액보다 훨씬 비싸서 우리가 직접 트럭을 렌트해서 이삿짐을 싣고 가기로 했다.

다행히 우리 집 장남이 인근 도시 웨스트 라휘엣(West Lafayette, Indiana)에 있는 퍼듀(Purdue) 대학에 재학 중이었는데 이사 소식을 듣고 주말에 집으로 와서 우리와 함께 버지니아까지 동행하겠다고 해서 잠시나마 걱정하고 있던 우리 내외는 크게 안심하게 되었다.


트럭에 이삿짐을 실으면서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러나 이미 시작한 일이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할 수 있다”는 오기(傲氣)로 버티면서 출발하기로 결심했다. 며칠 전부터는 지도를 보며 도상연습(圖上練習)을 하면서 버지니아까지 가는 길을 익히고 도로 번호도 기억해 두었다.

당시에는 네비게이터가 지금처럼 일반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지도를 보며 운전자에 게 시속 변경, 지방도로와 고속도로 번호 등을 알려 주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길눈이 밝은 아내는 살아있는 네비게이터 역할을 잘 수행할 것이라는 믿음과 내가 힘들 때는 장남이 운전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내 걱정을 덜어주었다.

이사 준비는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트럭 하나에 모든 짐을 다 실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짐의 양이 생각한 것보다 많아서 작은 트럭 하나를 더 빌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잠시 주춤하고 있었지만. 장남이 “제가 하면 되지요”라는 말 한마디로 작은 트럭 한 대를 더 빌려와서 나머지 짐을 싣고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버지니아로 떠나기 전에 트럭을 집 앞에 세워 놓고 되도록 빨리 운행에 필요한 여러 기기(器機)를 제대로 다룰 수 있도록 운전석과 짐칸 등을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운전석에 앉아서 보니 전방이 잘 보여 운전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안심했다. 특히 운전석 왼편에 달린 커다란 백 미러(Back Mirror)로 뒤에 따라오고 있는 장남 트럭을 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는 좀 더 안심이 되었다.

미샤와카를 출발하면서부터 눈으로는 백 미러(Back Mirror)로 뒤를 따라오는 장남 트럭을 주시하면서, 귀로는 아내가 알려주는 도로 정보를 들으며 우리는 ‘희망의 도시’ 페어팩스(Fairfax)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짐을 싣느라 점심 때가 되어 출발해서 쉬지 않고 달려 써머셋(Somerset Pennsylvania)에 도착했을 때는 사방이 어스름해지면서 몸도 피곤해 근처에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쉬고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해 마침내 이곳 버지니아 페어팩스에 도착했다. 그 도착지가 지금 우리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이삿짐을 싸는 문제부터 무엇 하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지만 “나도 할 수 있다”는 오기와 고집으로 1박 2일간 얼음 위를 걷듯 조심스럽게 운전을 해서 우리는 무사히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 그대로 비록 미숙한 사람인 내가 잘 할 수 있다는 경솔한 생각만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아내와 장남의 도움 덕분에 일을 그르치지 않았다는 고마운 마음은 지금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

<이규성 수필가,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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