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 목숨을 구하면 온 세상을 구하는 것”

2024-03-29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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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원 라이프’(One Life) ★★★★(5개 만점)

▶ 유대인 669명 난민 아이들 구출
▶영국인 니콜라스 윈턴의 실화로
▶표정으로 온갖 감정 연기에 감탄

“한 목숨을 구하면 온 세상을 구하는 것”

닉키가 자신의 난민아동구출 활동을 알리는 TV쇼의 방청석에 앉아있다.

2차 대전 발발 직전 체코로부터 대부분이 유대인인 669명의 난민 아이들을 구출해 영국으로 보낸 유대계 영국인 니콜라스 윈턴의 실화를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린 드라마로 보고 있노라면 서서히 감동을 느끼게 되는 잘 만든 영화다. 닉키가 구출해낸 아이들은 ‘닉키의 아이들’이라 불리고 닉키는 ‘영국의 오스카 쉰들러’라고 한다. 제목은 ‘한 목숨을 구하면 온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라는 유대인 격언에서 따온 것이다.

이 영화가 평범한 또 하나의 ‘홀로코스트’ 영화의 범주를 벗어나는 이유는 닉키로 나오는 노익장 앤소니 합킨스의 진중한 연기 탓이다. 전연 티를 내지 않는 착 가라앉은 아름다운 연기로 온화한 눈빛과 얼굴 표정으로 온갖 감정을 보여주는데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영화 속의 그와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영화는 1938년 나치가 체코의 주데텐란트를 합병한 1938년 후반과 그로부터 50년 후인 1987년을 오락가락하며 진행된다. 78세인 닉키(합킨스)는 아내 그리트(레나 올린)의 재촉에 따라 서재와 창고를 정리하다가 자기가 구출해낸 아이들의 신원과 사진이 있는 스크랩북을 발견한다.


여기서 얘기는 과거로 돌아간다. 런던의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닉키(자니 플린)는 체코에서 난민구출작업을 하고 있는 친구 트레보(알렉스 샤프)를 만나러 갔다가 길에 천막을 치고 사는 난민들을 보고 이들을 구출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집념적으로 구출작업에 매어달리면서 아이들부터 먼저 구하기로 작정한다.

아이들의 비자를 받아내고 영국에서 아이들을 받아줄 입양가족을 찾아야하는 일 등이 그리 쉽지 않은데 이 일을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 닉키의 정열적인 어머니 바비(헬레나 본햄 카터). 닉키와 바비는 관료체제와 싸우면서 아울러 신문에 자신들이 하는 일을 알려 기사화 하면서 체코로부터 기차로 아이들을 빼낸다. 나치가 난민들의 탈출로를 막아버리기 전에 아이들을 구출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는데 이로 인해 영화에 스릴과 긴장감이 감돈다.

그러나 닉키는 보다 많은 아이들을 구출하지 못한 것을 두고 평생 가슴을 앓는다. 나치가 막 체코를 침공한 직후 기차에 탔던 250명의 아이들이 나치에 의해 기차에서 끌려 내려지는데 닉키는 이로 인해 평생을 죄의식에 시달린다. 그가 밤에 뒷마당에서 혼자 소리를 죽여 우는 모습이 가슴을 찌른다.

창고에서 발견한 스크랩북이 BBC-TV의 인기 쇼 ‘댓츠 라이프’에 방영되면서 닉키의 활약이 널리 알려지게 되는데 쇼 제작자로부터 초청을 받고 방청석에 앉아 있는 닉키가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된다. 편안하면서도 감동적인 합킨스의 연기와 함께 볼만한 것이 헬레나 본햄 카터의 연기. 맹렬 여성의 연기를 똘똘이처럼 힘차게 해낸다. 제임스 호스 감독.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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