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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나를 찾는 여정…삼신당 느티나무 앞서 깨닫음을 얻다

2024-03-03 (일) 제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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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프 안의 한국 기행 - 맛집 투어와 호캉스, 목적 없는 유랑체험

여행이란 나를 찾는 여정…삼신당 느티나무 앞서 깨닫음을 얻다

안동 하회리 삼신당 느티나무와 소원쪽지들.

여행이란 무엇인가

왜 여행하느냐 묻는다면 스스로를 찾는 여정이라 말하고 싶다. 삶은 일상에서 떠나 봐야 또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아이러니 하게도 멀리 떠날수록 원점이 더욱 명확히 보인다. 마치 우리 미주 한인들이 지니고 있는 고국에 대한 사랑이 그렇다. 영국을 떠나 태평양 오지, 갈라파고스 제도에 다다른 찰스 다윈에게 ‘종의 기원’ 이 보였듯, 먼 곳에 도착하면 시발점이 더욱 또렷이 보인다. 눈요기만을 위한 여행은 뷔페 식당에 줄서 있는 채식주의자와도 같고 고찰과 철학이 없는 여행은 여러 곳을 표류하는 유목과 같다.

여행은 해석학적이며 비판적 시각을 키우는 것이다. 여행정보만을 전달하는 매체는 세상에 널려 있다. 그런 것을 원하시는 분이라면 이 칼럼은 얼른 접고 딴 곳에서 찾으시길 권한다. 여행은 우연히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설렘에서 시작된다. 그런 가슴 두근거림이 없다면 당신은 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르네상스

과거 한국은 미국이나 남미처럼 황금이 솟아져 나온 적도 없고, 룩소르, 탄자라 같이 금으로 찬란하게 덧칠해보지도 못했다. 단 한 번 바빌로니아, 장안, 로마, 파리, 런던 같이 세계의 수도라 자칭해본 적도 없다. 그러나 오늘날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르네상스를 누리고 있다. 르네상스라 말하긴 했지만 살짝 쑥스럽다. 이탈리아는 찬란한 그리스, 로마문화가 있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한국에 오면 나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에 탄 기분이다. 한국의 정치나 현실과 무관하게 내가 원하는 데로 날아다니며 즐기면 된다. 한국의 르네상스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200년을 못 버티었고 곧바로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제국의 헤게모니 안에서 1871년에야 독립했다. 그러나 그들의 찬란한 유산은 오늘날까지 빛난다. 대한민국은 처음 경험해보는 르네상스의 꿀맛 속에서 민족의 염원,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그래서 또 한 번의 르네상스를 재 창출할 수 있을까?

한국의 피렌체, 경주와 안동

수학여행때 첨성대에 오르고 놀던 그곳을 50년만에 다시 찾았다. 과거와 달리 첨성대에는 접근 금지 사인과 왕릉들을 보호 관리하며 새로 꾸민 경주박물관에서 본 디지털 영상과 세심한 유품 진열은 한국의 수준이 높아졌음을 입증했다. 서울을 제외하고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제일 많아 보였고 마주친 해외 관광객들에게 진행한 나의 아마추어 여론조사 결과 프랑스인들이 제일 많았고 그 다음이 미국인들이었다. 하지만 서양인들에게만 질문했으니 중국, 일본인 관광객들이 더 많았을 수도 있다. 문화대국 프랑스인들이 경주에서는 탑보다 많았다. “Vive La France!”

천년왕국 신라를 만나다

프랑스인들에게 두드러지는 자긍심은 그들의 언어와 드높은 문화에 기반하고 있다. 우리는 배를 움켜잡는 가난과 끝없는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유달리 자긍심이 강한 민족으로 살아남았다. 그 기반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내가 찾은 경주 신라역사관은 기원전 57년에서 기원후 935년까지의 천년왕국 신라를 접할 수 있는 전시관이다.


삼국유사에서는 경주를 “절이 별처럼 많고 탑이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었다”고 전한다. 그 찬란함은 신라 왕족들이 걸쳤던 화려한 금 장식구들의 환상적인 세공기술이 무언으로 말해준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관과 금제 허리띠, 금제 관식 등이 오늘날 어느 유럽산 명품들과도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세련미와 기술력이 있었다. 특히, 금 신발 위에 뽀롱 뽀롱 솟아 있는 금 물방울과 스파이크 장식은 Christian Louboutin 보다 1000년을 앞선 멋진 패션이라 입에서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신라 지배자들에게 황금은 곧 권력의 상징이었음을 보여주는데, 안타깝게도 이와 비슷한 경이로움과 슬픔을 잉카와 마야 유적지에서도 느꼈었다. 아무리 찬란한 문화가 있었다 해도 소멸되어 사라지면 눈으로 보는 즐거움보다 가슴에 스며드는 슬픔이 더 큰 법이다.

탈이라도 쓰고 쓴 소리를 해야만 알아들을 것인가?

경상북도 안동시에 소재한 전통 민속마을 하회마을로 이동했다. 풍산 류씨 집안의 발생지로 류성룡의 고향이며 600년 동안 터줏대감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전통 기와집들 담 안 편에 잘 영근 감들이 양반들 품위를 대변하듯 홀로 가지 끝에 앉아 잔잔한 미소로 반겨준다. 류씨는 성도 특이하게 류 또는 유로 쓰기도 하고 나는 류현진, 유소연의 팬이다. 두 선수 모두 매너도 좋고 클래스 있게 행동해서 좋다.

이곳은 하회탈춤으로도 유명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69호인 하회 탈놀이는 500년 전통 탈놀이로 우리 나라의 탈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탈을 쓴 광대가 양반을 향해 온갖 쓴 소리를 내뱉을 권리가 있었다. 탈춤을 보신 분들은 금방 이해한다. 왜, 김추자의 ‘솔’ 풍 노래들과 왜 한국에서 힙합은 자연스러운 지를. 그런데 대낮에 확성기 들고 고성으로 떠드는 데모대를 보면 차라리 탈이라도 손에 쥐어 주고 싶다.

삼신당 느티나무 앞에서의 깨달음

마을 중앙에는 수령 600년 이상으로 추측되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수많은 소원 쪽지들이 달려있는데, 우는 바람소리와 함께 왠지 스산한 느낌이었다. 풍산 류씨 시조인 전서공이 심었다는 이 나무를 잘못 건드리면 재앙을 입는다는 토속신앙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느티나무 앞에 탈모습의 장승이 서있는데 장승머리에 코사크 털모자처럼 소원쪽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나 역시 소원을 빌며 쪽지를 붙였다. 그러면서 바라본 탈의 모습에서 한국 고유 문화를 발견했다.

서양의 마스크(탈)은 비극과 희극, 기쁨과 슬픔이 확연히 양분되어 있다. 반면 삼신당 느티나무 앞에 홀로 서있는 탈은 기쁨을 표현하는듯 보이지만 웃음속에서 슬픔도 보이는 양면성을 지녔다. 한국사회에서는 누가 잘못을 저지르면 사정없이 질책하고 버린다. 그런데 고개 숙이고 자숙하면 얼마 안가 용서해준다. 미국에서 사형이나 종신형을 살 죄를 저질러도 한국에서는 몇 년 안 살고 나온다. 이것이 ‘정’이라면 나도 그 탈을 쓰고 신명 나게 춤추어 보고싶다.

무지에서의 해방

여행은 나의 고정관념과 무지함을 깨우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신라의 화려한 예술, 일본으로 전파되었던 백제의 보물들과 독보적 도자기 기술. 만주를 호령했던 장엄한 고구려의 용맹이 우리 DNA에 유수한 세월속에서 전수되어 내려왔다. 단지 그 고유 유산의 중요성은 인지 못한 채 어려운 현실만을 탓했던 과거가 있었다.

왜, 어떻게 한국의 K-문화가 국제사회에서 대세로 떠올랐을까 궁금하신 미주분들에게 고국 전국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문의 jahn20@yahoo.com

<제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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