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반복되고 무미건조한 것 같은 삶을 통해 삶의 의미 찾아’

2024-03-01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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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퍼펙 데이즈’(Perfect Days) ★★★★½(5개 만점)

▶ 인내심 갖고 봐야하지만 영화 끝나면 작품의 동경과 연민 후회의 여운 남겨

‘반복되고 무미건조한 것 같은 삶을 통해 삶의 의미 찾아’

히라야마와 그의 질녀 니코가 공원에 앉아 함께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중년의 과묵한 히라야마(코지 야쿠쇼)는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고 아래층에 내려가 이 닦고 세수하고 콧수염을 다듬고 다시 이층으로 올라가 화초에 물주고 등에 영어로 도쿄 토일렛이라고 쓴 작업복을 입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그리고 그의 특유의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쳐다본다. 이어 자판기에서 깡통 커피를 산 뒤 밴에 올라 카세트 테이프로 애니멀즈의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 등 60년대 팝송을 들으면서 일하러 간다. 그의 직업은 도쿄 시내 공중 화장실 청소원. 히라야마의 일상은 매일이 이렇게 똑 같은데도 그는 한 마디 불평 없이 자기 삶에 만족한다.

독일 감독 빔 벤더스가 만든 영화는 이렇게 반복되고 무미건조한 것 같은 삶을 사는 히라야마의 일상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보는 시적이요 아름답고 또 철학적이며 명상하는 듯한 작품이다. 벤더스 자신의 영화 ‘욕망의 날개’와 애잔하도록 적적함이 담겨 있는 야수지로 오주의 영화를 연상케 하는 우아한 영화로 올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가 너무 조용하고 반복되는 히라야마의 일상에 치중해 다소 인내심을 가지고 봐야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이 품고 있는 동경과 연민과 후회의 여운이 가슴을 헤집고 들어온다.

과연 히라야마는 어떤 과거를 지녔을까. 독서광으로 포크너를 읽고 쉬는 날이면 책방엘 들리고 일하는 날 점심때는 공원에 앉아 구식 필름 카메라로 잔잔한 바람에 잎들이 움직이는 나무들을 찍는 것을 보면 그가 자신의 과거와 결별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데 영화는 결코 그의 과거를 밝히지 않는다. 히라야마는 자기 일에 충실해 공중화장실 청소도 유난히 정성껏 청소한다. 남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지 히라야마는 자기 삶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이를 잘 알려주고 있다.


매일 같이 단골 간이식당에서 밥 먹고 쉬는 날이면 목욕탕에 가 목욕을 하고 사진 현상소에 들러 맡긴 필름을 찾고 가끔 단골 방에 들러 술 몇 잔 마시는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일상에 파랑을 일으키는 에피소드들이 우선 그의 젊고 수다 떠는 보조원 타카시(토키오 에모토)와의 관계. 타카시는 애수의 기운에 젖어있는 영화에 코믹 릴리프 구실을 한다.

이와 함께 단골 바 마담 마마(사유리 이시카와)의 전 남편으로 암에 걸린 토모야마(토모카주 미우라)와의 밤의 가로등 밑에서의 그림자놀이와 느닷없이 자기를 찾아온 10대의 질녀 니코(아리사 나카노)가 또 다른 에피소드. 니코는 가출을 한 것인데 삼촌의 집에서 며칠 묵는 니코와 히라야마의 관계가 정답기 짝이 없다. 딸을 찾아 히라야마의 여동생이 운전사가 있는 벤츠를 타고 온 것을 보면서 히라야마의 과거를 나름대로 짐작케 하는데 그가 자신의 과거와 함께 가족과 연결된 고리를 끊어버렸다는 것을 추측할 수가 있다.

히라야마는 오늘도 아침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자판기에서 깡통 커피를 사 밴에 오른 뒤 하늘을 쳐다보면서 가벼운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60년대 팝송을 들으면서 일하러 간다. 영화는 일본의 베테란 배우 코지 야쿠쇼가 혼자 어깨에 짊어지다시피 하고 있다. 그의 조용하고 깊숙한 연기가 뛰어난데 이 역으로 작년 칸영화제서 주연상을 탔다. 도쿄 시내를 샅샅이 찾아다니며 찍은 촬영도 아름답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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