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맥 강가에 섰다. 25년 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25년 전 덜레스공항을 통해 이민 수속을 밟은 후 두달여 동안 이곳에 머물다 동생이 살고 있는 다른 주로 떠나버렸다. 다시 이곳을 찾아와 포토맥 강가에 서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보니 엠’이 부른 ‘바빌론 강가에서’란 노래가 떠오른다. 유대인들은 70여 년 동안 바빌론에 끌려가 포로생활을 하면서 그곳에서 느낀 타국의 서러움과 고향인 ‘시온(Zion)’을 그리며 바빌론 강가에서 노래를 불렀던 그들이 왜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그들처럼 나 역시 긴 이민생활이 마치 포로로 끌려와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했던 것에 같은 동질감을 느껴서일까? 아님 그동안의 이민생활에서 겪었던 모진 일들이… 유대인들이 겪었던 그들의 일과 동일하다는 것을 내가 느낀 것일까.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내 이민생활도 그 세월 속에 묻혀 같이 흘러갔다. 워싱턴 DC는 내 머리 속에는 먼 옛날 꿈속에서 생각했던, 아득한 이야기가 되어가 버렸다.
그런 내가 이곳에 다시 왔다. 많은 회환이 가슴속에서 일어났다. 그때 내가 이 강을 옆에 끼고 살았더라면 어떠했을까. 최소한 타국에서 살아온 회환의 감정은 없었을까.
처음 이곳에 와서 포토맥 강을 보았을 때 낯설다기보다는 반갑고 정답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그것은 서울에 있는 한강처럼 도시 한복판을 가르고 흐르는 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풍경이 낯설다는 감정을 회색시켜주었는지도 모르겠다.
포토맥 강은 한강보다는 폭이 좁게 보인다. 강 주변을 따라 정착된 공동체의 모습도 비슷하다. 강 중앙에 있는 조그마한 섬도 한강의 여의도 보다는 적은, 뚝섬 같은 느낌이 든다.
포토맥 강은 웨스트버지니아의 포토맥 고원에서 체서피크(Chesepeake)만까지 이어지는 400마일에 달하는 지질학적, 생태학적으로 풍부한 환경을 따라 흐른다. 미국 대서양 연안에서 4번째로 큰 강이며, 미국 전체에서는 21번째로 큰 강이다.
포토맥(Potomac)이라는 말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언어로 ‘사람들이 소중한 관계를 하는 곳’이라는 뜻이란다. 참 뜻이 좋고 정감이 가는, 인간미 넘치는 말인 것 같다. 말의 뜻처럼 ‘이곳에 사는 사람들 역시 소중한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겠구나' 하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해 본다.
DC가 미국의 수도로,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되어 왔던 것은 아름다우면서도 자원이 풍부한 지질학적인 요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처럼 풍부한 자연환경과 자원이 다 어우러져 있는 포토맥강 같은 지형이 어디 있을까. 이 포토맥강의 위대함에 경의를 표하며, 포토맥 강과 함께 나도 같이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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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초희 포토맥 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