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프 안의 한국 기행 - 맛집 투어와 호캉스, 목적 없는 유랑체험
남대문 시장편에서 바라본 북창동 골목길, 불야성이던 밤거리에 ‘나이아가라’ 외에는 많은 상점들의 불이 커져 있다. 포차 여주인의 푸념처럼 줄지어 서있던 포차도 몇 안보였고 그나마 장사도 별반 잘되는 것 같지 않았다. 서민 경제가 걱정스러운 수준이었다.
한국의 팁 문화
미국의 팁 문화는 남다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엄청 부담된다. 반면 한국은 팁 걱정 없는 소비자 천국이다. 미국 팁은 20%에서 25, 30%, 그리고 알아서 더 주는 + 사인까지 영수증에 적혀 있어 당혹스럽게 만든다. 한국여행의 가장 장점 중 하나는 이러한 팁 문화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한국은 위계질서가 확고한 문화 탓인지 종업원은 주인이 주는 월급 이외에 손님에게 다른 보수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셀프가 한국에 걸맞은 문화다. 그래서인지 식당 종업원들은 손님과 말을 섞지 않는다. 다소 ‘냉’하다.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하다. 손님들에게 상냥하거나 각별히 친절한 서비스도 없다. 효율성이 가져다 준 현상이다. 좋고 나쁘고가 아닌 다른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이 한국에 가면 많이 당황한다. 30년 전 두 딸과 한국에 잠시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음식을 끝내지도 않았는데 아줌마가 테이블을 힘차게 닦으면서 아이들을 밀쳤다. 빨리 먹고 나가라는 ‘바디 랭귀지’를 아이들이 이해할 리 없었다.
시청 앞 플라자 호텔
서울시청 앞 광장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방에 짐을 푸는데 벨 보이가 팁을 정중히 사양했다. 호텔 규정이 그렇다며 머리 숙여 인사하고 나간다. 손이 무안했지만 와이프의 잔소리가 금방 뒤를 따랐다. “자기는 촌스럽게 왜 자꾸 팁을 주려 해, 여기 한국이야!” 돈에 있어서만큼 와이프에게 칭찬 들어본 적이 없다.
가격에 비해 방은 러브 호텔처럼 핑크 전등에 침대머리가 밤거리 여인들 손톱 매니큐어 보다 더 ‘샛’ 빨겠다. 부담감이(?) 몰려왔다. 플라자 호텔을 선택한 이유는 좋은 위치에 내가 첫 맞선을 보았던 장소였기 때문인데, 맞선 장소였던 카페는 사라지고 로비가 완전히 바뀌었다.
여러 번 강조하는 내용이지만 한국에서 과거의 감성을 찾기는 무척 힘든 일이다. 뉴욕 플라자 호텔도 영화에 수없이 나왔던 호텔이라 투숙하면서 기대에 부풀었는데 막상 투숙해보고는 여러모로 실망했었다. 서울 플라자 호텔 역시 룸은 협소했고 낙후한 시설이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역동적 근대 한국역사의 굴곡점에서 “대한민국” 함성이 울려 퍼지던 그 서울시청 광장이 방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니 ‘뷰’는 좋았다.
몸도 피곤하고 호텔 뷔페를 하려했더니 ‘세븐 스퀘어’ 뷔페식당은 만원이었다. 예약없이 불가능하다는 답변, 아직도 호텔 뷔페를 이렇게 좋아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발길을 돌려 30가지 식초를 발효시켜 음식을 준비한다는 한식당 ‘주옥’ 그리고 식당 입구에서부터 무게감 작렬하는 중식당 ‘도원’을 찾았지만 모두 손님들로 만원이었다. 호텔 식당은 안 찾아가는 미국과 완전 대조되었다.
북창동 삐끼들
호텔 뒷문을 나와 유명한 북창동 골목으로 들어섰다. 포장마차와 먹자 거리로 유명한 곳인데 코로나 이후 복귀에 실패한 모습으로 썰렁했다. 북창동 ‘삐끼’들이 지나가는 시민들의 발길을 잡았다. 삐끼들은 검은색 옷에 건장한 남자들인데 마치 건달 이등병 같은 모습이 안타까웠다. 길한복판에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마치 남대문시장 암달러상 마냥 호객행위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삐끼’ 가 있으면 ‘여자’가 있다고 보면 된다. 아니나다를까 ‘나이아가라’란 거창한 타이틀에 걸맞은 화려한 네온 간판이 5층건물을 장식하고 있고 작게 ‘젠틀맨 클럽’이라 쓰여 있다. 꼭 신사야만 출입이 가능한지, 신사들은 이런 클럽을 선호하는지, 왜 이런 류의 술집들은 젠틀맨 클럽이라 불리는지 궁금했다. 막상 들어가보면 젠틀맨 하고는 너무 거리가 멀건만. 아~하! 젠틀맨처럼 행동하라는 경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팁에 인색한 한국에서 술집만큼은 아주 다르다. 술보다 배가 고팠던 나는 아쉽게 ‘나이아가라’를 뒤로하고 포장마차에 들어섰다. 여주인이 나를 젊은이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힌다. 한상에 200불하는 호텔식당과 서울시민들의 생츄어리인 포장마차는 극과 극이다. 생츄어리 어원이 세인트(성) 이니 ‘성역’ ‘성지’ 라는 의미. 그러나 ‘안식처’가 보다 어울리는 표현 같다. 차들이 오고 가는 길가에서 부담 없이 삶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 날수 있는 공간을 가진 서울은 여러모로 축복받은 도시임에 분명하다.
포장마차에서의 정치, 철학, 주고받는 술의 미학
의자에 앉아있는 젊은 여인은 첫눈에도 프로같았다. 옆에 반대머리 노총각이 남자는 착하면 안 된다며 투정을 부리고 포차 주인여자는 “인간은 착하게 살아야 해 그걸 이용하는 놈들이 나쁘지” 하며 인생철학을 설교하고 있다. 여주인이 내게 와서는 “요즘 너무 살기 힘들어요, 보통 손님들하고 정치 얘기 안 하는데, 이번에는 나 무조건 투표할 거야.” “그래요?” “지난번에는 둘 다 싫어서 투표도 안 했는데 이번에는 꼭 해야 갔어.” “윤 대통령 마음에 들던데” 나의 그 한마디에 친절하던 여주인 태도가 돌변했다. “정치 얘기하지 마세요. 여기 오는 손님들 모두 처음에 술잔 돌리고 좋다 가도 정치 얘기만 하면 멱살 잡고 싸워요.”
정치 이야기는 본인이 시작해놓고 적반하장이다. “경기가 그렇게 안 좋아요?” “여기 있는 나물, 생선들 모두 2배, 3배 올랐어요. 남대문시장 보이죠. 이 시간이면 노숙자 천지이고 나도 무서워서 거기 못 걸어 다녀요.” 여주인 술기운에 홍기는 있었지만 인생 역경이 보였다. 내가 소주 한잔 따라주자, 한입에 털고 저편으로 간다.
사랑하면 안 되는 여자, 포차 여주인
내 앞에 홍합탕과 소주 한 병이 놓였다. 매서운 서울 날씨에 뜨거운 홍합탕이 속을 녹여준다. 두 젊은이들과 소주를 주고받던 여주인이 내게 와서 “저 노총각 단골인데 참 착해, 오늘 좀 많이 마셨네.” 내가 “잡아나 먹지 마세요”라고 하자 내 소주잔을 뺏어 마시며 “그런 거 아니야”하며 다시 저쪽으로 달아난다.
기대와 달리 젊은 여인이 홀로 떠나자, 여주인이 나에게 살며시 저 노총각과 맺어주려고 그녀를 이곳에 불렀단다. 헐, 첫눈에 봐도 술집 여자인데 포차에서 무슨 소개팅까지… “노총각이 너무 착해, 사랑하지 말아야 할 여자를 사랑해.” 그녀는 벌써 그 말을 나에게 수십 번하고 있었다. 나도 취했는지(혼술이 이래서 무섭다) 그만 말실수를 했다. “딱 보니, 노총각 외로워, 이모가 안아줘!” 여주인이 “안돼, 안돼”하며 손사래 친다.
노총각은 완전 취해서 몸도 못 가누는 상태. 그때마다 여주인이 몸을 부축여 일으키는데 둘의 손동작이 무언으로 둘의 관계를 말해 주고있었다. 노총각은 결국 택시 탄다며 나갔는데 내 술잔이 비기도전에 다시 기어들어온다, 여주인은 장사도 손 놓고, 노총각 수발 들기 바빴다.
포장마차 위에 떨어지는 술잔과 겨울바람
새벽 2시, 외국인 커플이 포차밖에서 두리번거리는 것을 내가 들어오라고 해서 앉혔다. 싱가포르에서 지금 도착했는데 남편은 야마하에 근무하고 와이프는 피아니스트인데 우리는 금방 친해져서 온갖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한참 떠드는 사이 새벽 3시가 지났다. 싱가포르 커플이 먼저 일어났다.
그들이 떠나기가 무섭게 여주인 내게 쪼르르 달려와서는 “왜 외국사람들에게 한국 흉봐요? 그건 아니지” 하며 따진다. “먹고 살기 힘들다며?” “아니 그건 우리들끼리 얘기지, 외국사람들에게 그런 말 왜 해.” “대한민국 선진국이에요, 사실대로 말해야 더 인정 봤지, 미국 욕한다고, 미국 망하나?” “그래도 외국사람들에게 한국 흉보지 말아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조금 창피했다, 포차 여주인이 나보다 한참 애국자였다. 돈계산을 하면서 건네는 거스름돈에 좀더 얹어주며 “내일 설이지” 하며 포차를 나서는데 여주인이 눈을 바닥에 깔고 꾸뻑 인사하며 “감사합니다, 설날 엄마 찾아가서 용돈드릴 게요” 하는데 눈시울이 젖는다.
한국에서의 팁은 ‘정’을 의미하며 주머니 돈은 내 돈이 아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서울의 빌딩숲 사이로 겨울바람 매서웠지만 포차와 여주인, 그리고 고개 숙인 채 자리를 못 떠나고 앉아있는 반대머리 노총각이 왠지 그립게 만드는 겨울 밤이었다.
문의 jahn2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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