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세월 속에 지난 해와는 전혀 다른 이민 반세기 50주년을 뛰어넘는 이민 51년을 향해 전진하는 나의 특별한 해 2024년을 맞았다.
50여년 전 남편이 보내준 가족 초청장으로 분주하게 미 대사관 문턱이 닳토록 들락거렸던 일, 드디어 입국 비자를 받고 1972년 12월 8일 양가 부모님 형제들의 배웅을 받으며 세돌이 채 안된 딸아이 손목잡고 고국을 떠나온 나, 1년 6개월만의 남편과 재회의 기쁨을 갖던 그날을 어떻게 표현해야 적당한 표현이 될까?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아니 묻지도 않는 나의 이민의 삶 50여년이 흘러간 세월의 흔적을 더듬어 보게 된다.
둘째 딸을 낳고 산후조리도 호강도 못받는 환경, 아무도 도와주는 이웃도 없는 삭막함에 밀어닥치는 향수병이 겨울 날씨만큼 매섭게 추워 얼마나 많이 울었던가.
첫 직장을 얻고 베이비시터(babysitter)에게 어린 딸들을 맡길 때 떨어지지 않겠다고 울어대는 어린 딸들의 울음소리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아려옴을 숨길 수 없다. 이민의 삶을 위해 경험도 없이 일이 주어지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던가. 고달픔, 외로움, 즐거움이 뒤섞인 인생의 긴 여정을 엮어온 50여년의 긴 이민생활 속 면면의 삶이 주마등같이 주렁주렁 추억 속에서 헤매는 아침을 맞는다.
50년이란 긴 세월이 어찌 바람 한점 없는 잔잔한 호수같을 수가 있었을까. 때론 건강의 위기도 찾아왔다. 예기치 않았던 병마에 시달리며 고통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회복이 안되어 눈물도 많이 흘린 날도 있었다. 실직하고 새 직장을 찾느라 동분서주하던 일들, 우체국 직원이 되어 밤일 하느라 힘들고 고단한 삶도 살아냈다.
지나온 이민 50여년의 인생은 자신과의 싸움이나 다름없다. 어찌보면 생존의 기본을 위해 싸워 온 힘든 인생이었으니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터득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향기를 골고루 맡으면서 살아온 보람도 있는 나의 인생길이 아닌가.
특별히 감사함은 이민 초기 한인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교인들과 형제같은 우애를 다지며 성가대에 조인해 40여년간 주님의 성호를 열심히 찬양하게 축복 주신 주님의 사랑이다. 찬양의 힘은 고달픈 이민자 삶에 큰 위로와 용기가 됐다. 특히나 남편과 함께 뚜엣으로 주님의 성호를 열정적으로 찬양했던 그 시절은 보물 같은 그리움이다.
이제 노년의 반열에 끼어 무엇보다 건강한 삶에 주목할 때가 아닌가. 이제 심신의 고달픔에서 벗어나 가버린 세월을 거슬러 올라 갈 수 없는 지금, 눈앞의 세월을 붙잡고 늘어져 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
날마다 새록새록 변해져가는 세월에 발맞출 수는 없지만 남에게는 물론 아니 자식들에게도 짐이 되지않는 열심히 살아가는 부모로 인정 받고 싶다. 얹혀사는 그런 노년은 되지 않도록 앞가림은 필수 조건이다.
50여년의 긴 이민 생활을 회상하는 오늘도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놀라운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더 낳은 노년의 길을 향해 문화적 사회적 의미가 더욱 부각할 수 있는 새로운 인생길을 걸어가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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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설자 수필가 페어팩스,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