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지혜로움인가, 미운(謎運)풀이로 얻은 노력의 소산(所産)인가. 그 해(年)가 그 해(年)이지 뭐 다를 게 있다고 무슨 해 무슨 해 이름까지 붙여놓고 매년 다른 이름의 해를 맞아 들이며 호들갑을 떠는가? 하면서도 나 또한 별도리없이, 짧았다면 짧았고 길었다면 길었던 이 해(癸卯年)와 함께 했던 감회에 젖을 수밖에 없고나!
내 이를 몰랐던 바 아니건만, 떠나는 이 해가 이렇게도 아쉽고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들 줄 알았더라면 내 이 해를 그리 소홀히 다루지 말았어야 했었는데….,
이리도 허(虛)하고 후회스런 마음을 보이면, 끝내 떠나야 할 이 해의 발길은 또 얼마나 허들거릴가마는 그러나 그건 나혼자만의 기우(杞憂)에 불과하리라.
이 세상의 어느 누가 무정(無情)한 이 해를 붙잡아 둘 수 있겠는가. 살아 있는 자라면 그 누구로부터라도 떠나버리고야 마는 이 해, 가고 나면 되돌아올 리 없는, 함께 살았던 해가 아니던가.
다른 열두 해가 왔다간 후에라야 같은 이름의 이 해가 다시 되돌아오긴 하겠지만 그 때의 그 해는 이름만 같을 뿐 오늘의 이 해는 아닐 것이요, 그 해가 온다고 해도 내가 그 해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아! 이 적막함이여!
가야만 하는 이 해를 잡을 수도 없고, 오는 해 또한 마다할 수도 없는, 아! 이 난감한 순간이여! 오면 오고 가면 가는가 보다 하면 될 터인데,,,, 산수(傘壽)의 나이 탓이런가? 가는 해, 오는 해에게 그저 미안하기만 하구나. 그러나 어이하리, 서둘러야 하는데,,,
비록 주름잡힌 얼굴이지만 웃는 얼굴로 기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해야 하는데.... 마음은 이리도 서두르건만....
낯익은 것 같으면서도 어쩐지 낯선 해를 맞는 듯 묘한 기분으로 어정쩡히 선 채, 준비도 대책도 없이, 헌 해보다는 새해가 그래도 좀 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해야만 하는 이 초라하고 측은한 나의 모습이여!
“자유로운 사람은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는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존재의 중단은 결코 나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죠지 기싱(George Robert Gissing)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종말과 함께 영원한 평화가 오리니 그것이 늦게 오든 빨리 오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를 되새기며 내나름대로 죽음을 기꺼이 수용할 자세를 다잡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리도 아쉬움이 클 줄이야.....
이 해(癸卯年)의 커튼 뒤로 눈깜박할 사이에 숨어버린 지난 삶의 조각들, 산다는 것은, 무엇이 들어있는지 조차도 알 수 없는 그해의 보따리 끈을 쬐끔씩 쬐끔씩 눈치를 보며 풀어가면서 야금야금 꺼내 써버리는 것,
또한 그 속에 얼마나 차있는지도 모르는 술병의 술을 몰래 꺼내 홀짝홀짝 마셔대는 일, 그러면서, 그지없이 무거운 삶의 지게를 어깨에 메고 그 많은 해들을 무심히 갈아치우며 파란만장한 나그네 길을 걸어 나 여기까지 왔구나.
어쩌면 우리는, 너도 나도 새해가 갑자기 황당한 모습으로 우리를 둘러업고 우리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어디론가 냅다 달릴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 얼굴을 가린 채 천천히 다가오는 새 해의 그 속을 알지 못해, 너도 나도 점괘를 보고 토정비결을, 명리학 서적을 오늘도 뒤적이는데, 새해가 벌써 대문 앞에 도착했다는구나. 잘 가거라 계묘년(癸卯年)아! 어서 오너라! 새해(甲辰年)야! 얼굴 좀 보자. 열두해 만에 불러보는 너의 이름이 아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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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렬/뿌리와 샘 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