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펜 한국본부 주최 제11회 세계 한글작가대회 마지막 날에 정동과 덕수궁을 답사했다. 먼저 간 농업박물관은 전통농경문화를 통해 농업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기 위해 농협에서 1987년 중구 새문안로에 설립했다. 농경문화유산을 지키는 도심 속 농경문화체험 교육장이다.
2005년 새롭게 단장한 농경유물의 입체적 전시실은 농기구, 민속품, 고문서, 서울시문화재자료 4점을 포함한 총 4,000여 점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이어서 정동길로 들어섰다.
정동은 조선 태조의 두번째 부인인 신덕왕후 능이 있던 정릉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정동길을 따라 이화여자고등학교 심슨기념관을 방문하여 벽돌교사도 들어가 보았다. 건물 밖에 있는 유관순 동상 앞에서 잠시 묵념을 했다. 동상 뒤로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넘어간 담장이 있다.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 심슨기념관은 1915년에 준공된 옛 이화학당의 교사(校舍)로 지금은 이화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화 학당은 1866년 미국인 선교사 스크랜턴 부인이 서울 정동에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근대 교육 기관이다. 배꽃을 의미하는 ‘이화(梨花)’ 라는 교명은 고종이 지어 하사했다.
유관순 열사와 김활란, 김옥길, 장상 이대총장 등 많은 인재들을 배출했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갔다. 건물 앞 벤치에 걸터 앉은 이승만 대통령 동상을 보니 친근감이 느껴진다.
배재학당은 1885년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한국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으로 정동에 설립한 사립학교이다. 고종 황제가 ‘유용한 인재를 기르는 집’ 이라는 뜻으로 ‘배재학당’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이승만 대통령, 서재필 의사, 주시경 한글학자, 김소월 시인, 지청천 광복군 사령관 등의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2008년 배재학당 동관 건물에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이 개관했다.
우리 일행은 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과 정동제일교회 건물도 보았다. 걸어서 중명전으로 이동했다. 중명전은 1901년 지어진 2층 벽돌건물로 지어진 황실도서관이었다. 1904년 덕수궁이 불타자 고종의 집무실인 편전이면서 외국사절 알현실로 사용되었다.
1906년에 태자이던 순종과 윤비와의 혼례가 있었던 곳이다. 중명전은 나라의 외교권을 일본에게 빼앗긴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던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이어서 덕수궁 안으로 들어갔다. 덕수궁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궁궐이며 본래 이름은 경운궁이다.
1896년 고종이 일본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약 1년 동안 피신한 사건인 아관파천(俄館播遷)이후 1897년 고종이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궁궐다운 전각들을 갖추게 되었다. 1904년 화재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이듬해에 다시 중건되었다. 중화전은 왕의 중요한 의례가 열리던 곳이다.
정관헌은 덕수궁 안에 있는 최초의 서양식 건물로 연회를 하던 곳이다. 1906년엔 대안문(大安門)이 수리된 후에 대한문(大漢門)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1907년 순종이 즉위 후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호칭이 변경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궁역이 대규모로 축소되었다. 남녀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활보하는 모습이 희망 차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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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