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보면 가슴이 설레이고 동심으로 돌아가 마음이 순수해진다. 겨울에는 눈이 와야 겨울 맛이 난다. 집 안팎의 나무들에 쌓인 눈은 친구처럼 정겹다.
이번 겨울에 내가 사는 뉴욕은 예년보다 눈이 많이 왔고 추웠다. 열흘 전에는 눈이 드문 택사스와 조지아, 사우스 캘로니아에 이르기까지 눈이 왔고 강추위가 몰아쳤다. 폭설이 예보되면 눈이 내리기 하루, 이틀 전부터 뉴욕시와 뉴욕주에서는 비상체제가 가동되어 대비한다.
시장과 주지사가 관계 고위 공직자들이 배석한 가운데 경고 성명을 발표하고 기자회견도 한다. 폭설이 내리는 날에는 안전을 위해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고 집안에 머무르라고 한다. 학교는 휴교한다.
눈폭풍 경보가 발령되면 식료품을 미리 사려는 사람들로 수퍼 마켓이 붐빈다. 내가 영하의 날씨에도 1시간 동안 산책을 하는데 매서운 북풍에 얼굴이 시리더니 나중에는 얼얼했다.
차도에는 눈이 오기 전부터 제설차가 염화칼슘을 뿌렸다. 어느 곳에는 너무 많이 뿌려 도로위에 진뭉갠 것 같았다. 이전에 내린 눈이 대부분 그대로 있는 운동장에는 캐나다 구스 50여 마리가 잔디를 쪼아먹고 있었다. 마치 폭설에 대비하여 미리 많이 먹어두려는 것 같았다.
이른 아침과 낮에 집앞 인도에 내린 눈을 치웠는데도 눈이 그치지 않아 저녁에 다시 나가 쌓인 눈을 삽으로 치웠다. 1월 25일과 26일 미국 중부와 동부에 걸친 겨울폭풍으로 항공편이 하루에 12000편이 취소되기도 했다.
폭설이 내리는 날이나 다음날에는 관공서나 회사들은 문을 닫는 곳이 많다. 눈을 뒤집어쓴 나무를 보면 안스러웠다. 하지만 겨울나무는 눈보라 강추위에도 묵묵히 견디면서 봄을 대비하여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었다.
동장군이 아직 기세를 부리는데도 입춘은 어김없이 왔다.
입춘(立春)은 고대 중국의 황하 유역에서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농사시기를 정한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이다. 봄이 시작된다는 날이지만 날씨는 봄날 같지 않은 때가 많다. 물러가는 겨울의 차가운 기운과 다가오는 봄의 따뜻한 기운이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운이 크게 트이길 기원하는 뜻에서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글을 대문에 붙였다. 눈이 많이 온 해는 풍년이 든다는 말을 내가 어렸을때 들었다. 올해 풍년이 들고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눈 녹듯이 잘 풀리기를 바란다.
다음은 입춘이라는 제목으로 내가 쓴 시이다.
“산에 들에 눈 쌓여/아직 온기를 나눠주지 않는데/오늘이 입춘이라네//미리 알았는지/산 속 실개천/얼음 아래 졸졸 물 흐르고//들판을 덮은 눈 위로/새싹이 고개 내미네//동장군의 기세등등하여/봄을 까마득히 잊고 움츠리고 있을 때/희망 잃지 않도록//옛사람들/봄의 척후병 겨울에 침투한 날을/입춘으로 정했나 봐//남은 겨울/눈보라, 강추위 견뎌내어/향기 나는 꽃들 춤추는 봄날에//가슴 뛰는 노래 부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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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