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미래기억’

2025-12-23 (화) 07:57:57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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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를 보면 두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다. 롯의 아내는 천사들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불과 유황으로 사라져가는 환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뒤돌아보았다.

그 즉시 그녀는 소금 기둥으로 변한 채로 죽었다. 노아는 그의 시대에 가장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포도주를 만들어 취하게 된 일로 삶을 마쳤다.

의로운 사람 노아가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영성이 퇴보했다는 것은 안타깝다. 과거의 무의미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선 미래를 바라봐야지 뒤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 (조너선 색스의 ‘Studies In Spirituality' 중에서)


공허-허탈감의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공허-허탈감으로 고통당하는 현실을 놓고 하나님의 실존을 부정하는 구실로 삼을 때 그 순간부터 인간의 뒤를 돌아보게 되고 미래기억을 상실한다.

의로운 사람 노아가 술에 취해 의식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그가 미래기억을 상실하므로 말미암아 야기된 심각한 인생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허-허탈감에는 복합적 이유가 내재해있다. 신실한 신앙인이라면 공허-허탈감 안에 내재하고 있는 하나님의 복합적 이유를 겸손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아브라함 일가가 살았던 바빌론 땅 갈대아 우르는 수메르 문명의 중심지였다. 당시 바벨론 광활한 평야에는 최고의 농업도시들이 즐비했다.

그 농업도시들을 중심으로 첨단 농업기술, 인쇄술, 천문학, 예술이 발달했고 온갖 우상을 숭배하고 자랑하는 잡신 신앙의 중심지였다.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말씀했다. 아브라함의 가족은 그곳을 떠나 하란에 머물렀고 하란에서 또 한 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떠났다.

이제 또 한 번의 긴 세월이 흘러 아브라함의 나이가 늙어 137살 쯤 되었다. 아브라함은 홀연 공허-허탈에 사로잡혔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 찾아오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삶의 의욕을 상실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 무렵에 아브라함의 어두운 심령을 밝히는 기억하나가 떠올랐다.

처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하신 말씀에 대한 기억이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 기억을 미래기억(memory of future)이라고 부른다. 이 미래기억은 아브라함의 잠자는 신앙을 깨웠다. 아브라함은 미래에 일어 날 축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했다. 그 땅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거쳐 후손에게 계대(繼代)되었고 지금 이스라엘 민족의 국토가 되었다.


5천년 인류역사 속에서 유대인이 문명 혹은 문화의 주인이 된 경우는 거의 없다. 유대인 중에 유명한 영화배우, 운동선수나 비틀즈에 버금가는 톱 가수는 없다. 황하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슬람 문명과 경쟁 해 본 적이 유대 역사엔 없다.

유대에겐 석기시대-청동기 시대-철기시대로 연결되는 생태학적 진보 고리도 없다. 유대인은 군사 패권을 손에 쥐어본 적도 없는 지중해 변방의 소수 유목민(遊牧民)에 불과하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한 미래기억이 관솔불처럼 그의 후손들 가슴속에 지금도 타오르고 있다. 당신은 리더인가. 당신의 미래기억은 무엇인가.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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