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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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2023-12-29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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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토끼의 해인 계묘년(癸卯年)에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사건 사고가 많았고 그만큼 개인적으로도 기쁨과 슬픔이 많았다.
올 한해 동안 친한 친구 한 명은 타인종 며느리를 맞아들이는 과정에서 약혼식과 결혼식의 풍습 차이로 밤잠을 못 자더니 아들의 현명한 ‘혼전계약서’로 인해 많은 것을 서로 양보하고 새해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또 존경하는 한 분은 남미로 의미있는 일을 하러갔다가 뇌출혈로 쓰러져 수많은 이들의 애간장을 태우게 하더니 무사히 뉴욕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하고 일반병동에서 재활 중이라 한다.

그리고 30여년 활동하던 미국을 떠나 유럽에 이주, 런던, 포루투갈, 모로코, 런던 등을 종횡무진하며 맛의 여행기를 쓰던 분은 현재 파킨스병으로 더 이상 여행을 못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전쟁터에서만 포탄이 우리들의 발아래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 사이에서 전혀 상상못하던 일들이 폭탄처럼 우리 앞에 떨어지는 일들을 수시로 경험하고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고 혹자는 말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착하게 살아야지, 죄짓지 말아야지’ 하는 것은 큰일을 당하는 분들이 성실하게 살면서 남을 배려해 온 좋은 분들이어서고, 선하게 살아온 이들이 예기치않은 사고를 당해도 기적을 일으키고 솟아날 구멍이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세계 경제의 후퇴와 물가 상승으로 인해 가정 경제는 더 어려워졌다. 겨울이 겨울 같지 않은 기후변화에 갖가지 재난이 그치지 않는 재앙의 시대이다.
주위 환경도 힘든데 우리가 사는 미국은 당장 내년에 대선이 있다. 얼마나 사회가 더 혼란스러워질지 예측불허이다. 이민자로서 미국의 변화는 곧 나자신에게 닥칠 변화이다.

어디에 살더라도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고 나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 인간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새해 2024년은 어떻게 맞아야 할까?
2024년은 갑진년(甲辰年) 용의 해이다. 그것도 청용(淸龍)의 해로 파란색 또는 초록색을 띤 용을 의미한다. 전설에서는 용이 도를 깨우치면 비늘의 색이 파란색이나 푸른색으로 변해 청룡이 된다고 한다.

우리는 중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상상 속 용의 모습을 보았었다. 7세기 고구려 강서대묘 동벽 벽화에 청룡이 새겨져 있다. 평안남도 대안시 강서대묘 안에 있는 벽화의 주제는 사신-청룡, 백호, 주작(새), 현무(거북)로 이들은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수호하는 신령스런 동물이다.

사신도는 불교가 쇠퇴하고 도교가 성행하는 고구려 후기의 무덤 벽화에서 유행하게 되는데 청룡은 왼쪽 앞발을 뻗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그렸다. 어깨 부분에 날개털이 불꽃 모양으로 길게 뻗어있고 다리 뒤로는 가는 털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튀어나온 커다란 두 눈에 길게 내민 붉은 혀 등이 섬세하고도 유연하게 그려져 있다.

동쪽을 수호하는 청룡은 오행 중 나무(木)와 봄을 관장하며 비와 구름, 바람과 천둥번개를 비롯한 날씨와 기후, 식물을 다스린다고 한다. 또한 용은 물을 다스리니 바다를 다스리는 신을 용왕(龍王)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누군가가 “지난밤에 용꿈을 꾸었다.” 고 하면 태몽인가? 아니면 얼른 복권을 사라고 할 정도로 용은 길조, 행운을 뜻한다. 집안이나 사회, 나라에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계묘년 한 해의 잘잘못은 모두 과거가 되었다. 다가올 미래가 알 수 없는 두려움, 위축감을 주기도 하겠지만 올해 못한 일 내년에 하면 된다. 새로운 출발에는 다시 시작하는 희망이 있다,

이해인 수녀의 시 ‘12월의 시’ 중에 우리가 이 시즌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다 들어있다.
“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십시오. (중략)
12월엔 묵은 달력을 떼어 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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