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트워즈 마이 웨이...’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 마지막 소절을 부르고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뜨자 희한한 광경이 벌어졌다. 요란한 박수 소리와 함께 ‘브라보, 앵콜!’ 이 쏟아져나오는 것이 아닌가. 어떤 젊은이는 양손 검지손가락을 입에 넣고 휘파람까지 불어댔다. 얼마 전 토요일 저녁, 맨하탄에 있는 직장을 파하고 뉴욕의 어느 ‘라이브 뮤직 레스토랑’에 들렀을 때 생긴 일이다.
50년 넘게 손에서 떠나있던 기타를 다시 잡게 된 것은 여러 해 전, 세탁소에 불이 나고서였다. 손님 옷 배상이며 가게보험료 신청 등 복잡한 화재수습 절차가 마무리되자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다. 가게 문은 닫혔고 시간은 남아돌았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e-bay 에서 중고 ‘야마하’ 기타를 헐값에 구입해 아무도 없는 다락방에 올라가 기타반주에 실어 노래를 불러보았다. 반세기 저너머 까마득한 옛날에 치던 기타인데도 몇 번 쳐보니 손가락들이 신통하게도 제 갈 길을 찾아가며 코드를 짚어주었다.
백설희씨가 부른 ‘봄날은 간다’를 몇 번 연습한 후 스마트폰으로 찍어 ‘어느 할배가 부른 봄날은 간다’ 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렸더니 이변이 일어났다. 단 2~3주만에 조회 수가 26만 명을 돌파한 것이다.
나이를 먹으니 한평생 살아오면서 겪었던 희로애락, 우여곡절, 산전수전들이 마음 속에서 곰삭고 발효되었는지 나름대로 개성있는 소리가 되어 나왔다. 또 백발노인이 기타를 치며 가요와 팝송을 부르니 희소가치도 작용했으리라. 아무튼 유튜브 구독자 수는 계속 늘어났고 자연히 팬 관리(?)를 하다보니 연주와 노래를 함께 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200여 곡으로 늘어났다.
틈틈이 시간을 내어 집 근처의 요양원이나 ‘어덜트 데이케어 센터’에 정기적으로 위문공연을 갔다. 요양원 사람들은 처음에는 기타를 들고 온 동양인 할배에게 마뜩잖은 반응들을 보였다. 프로그램 매니저가 소개를 해도 미국 할머니들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존 덴버’의 ‘컨트리 로드’를 부르자 할머니들은 의자를 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를 부르자 할머니들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프랑크시나트라’의 ‘마이웨이’를 부르자 할머니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요양원 입소자들의 나이가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많은 정도이니 젊은 시절 즐겨듣고 부르던 노래들도 거의 나와 일치하였으리라. 특히 ‘엘비스 프레슬리’, ‘존 덴버’, ‘프랭크 시나트라’, 톰 존스’, ‘비틀즈’, ‘앤디 윌리엄즈’ 등을 좋아했다. 원로가수들 노래 틈틈이 내가 작사 작곡한 곡도 들려주었다.
젊은 시절에는 남들 앞에서 노래나 연주를 전혀 못하던 내가, 더구나 작사 작곡은 꿈도 못꾸던 내가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싱어’, ‘송라이터’, ‘기타리스트’가 되어 요양원 위문공연에 라이브무대에까지 서게 되었으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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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호/자유기고가>